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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기사)

배우 최강희 씨 골수 기증, 이렇게 했어요

"배우 최강희 씨 골수 기증, 이렇게 했어요"

[기고] 조혈모세포 기증 거부의 원인과 대안 찾기

 

윤명주(한국환자단체연합회 객원기자)

 

 

힘겨운 항암치료도 묵묵히 견뎌내는 4살 수현이

 

수현이의 병명은 소아인구 백만 명 중 1.2명꼴로 발생한다는 '연소성골수단핵구성백혈병(JMML)'이다. 수현이가 완치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 길뿐. 한국인 아빠와 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특이한 유전자를 지닌 수현이와 맞는 조혈모세포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국내 기증 등록자는 물론 국외까지, 2600만 명의 정보를 샅샅이 살핀 결과 중국에서 3명이 일치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1명은 정밀검사 결과 불일치 판정이 나왔고 다른 2명은 기증의사를 철회해 검사조차 하지 못했다. 수현이 아빠는 직장 동료를 만나는 것부터 교회, 국방부, 다문화가정 단체를 다니면서 기증 등록을 호소했고 심지어 길에서 전단지를 직접 나눠주기도 했다. 엄마는 태국으로 건너가 기증의사가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해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모질게도 같았다. "일치하는 공여자가 없습니다."

 

 

▲ 4살 수현이는 한국인 아빠와 태국인 엄마 사이에 태어난 희귀백혈병 어린이다. 수현이의 사연은 지난 19일 MBC 휴먼다큐 '사랑'에서 '수현아, 컵짜이 나(고마워)'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MBC 홈페이지

 

 

수현이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반일치 동종조혈모세포 이식. 부모 중 한 명으로부터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 것이다. 유전자가 절반밖에 맞지 않기 때문에 '생착 실패'나 면역거부반응인 '숙주병'의 위험성이 높지만 조혈모세포를 이식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수현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난 2월 엄마로부터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수현이는 퇴원 직전 심각한 '숙주병'으로 극심한 고통과 인내의 과정을 겪었지만 모두 이겨내고 퇴원했다. 7차례에 걸친 항암치료와 계속된 기증자 찾기에 지칠 대로 지친 아빠였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은 결과였다.

 

 

 

▲ 수현이는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자의 부족과 기증 등록자의 기증의사 철회로 결국 50%만 일치하는 엄마의 조혈모세포로 이식을 받았다. ⓒMBC 홈페이지

 

 

일치하는 기증 등록자가 25명이나 됐지만

15살 민준(가명)이는 2009년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2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2012년 3월에 치료를 종료했지만 4개월 만에 재발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기증 등록자 중 민준이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사람은 25명. 2차 검사를 마친 7명은 민준이에게 적합하지 않은 기증 희망자로 밝혀졌다. 남은 18명의 2차 정밀검사가 남아있었지만 엄마는 희망을 가져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6명은 기증 철회, 2명은 기증이 불가능한 질병을 갖고 있었고 3명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남은 7명의 2차 검사 결과는 모두 불일치였다.

민준이는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했지만 언제 또 재발할지 알 수 없다. 대만에 유전자가 일치하는 기증 희망자가 1명 있다는 얘길 들었지만 희망을 갖기가 벌써부터 두렵다. 그렇지만 이식 후 완치가능성이 70%나 된다는데 기증자 찾기를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민준이의 엄마는 계속해서 기증자를 찾고 있고 민준이는 힘겨운 항암치료를 견뎌내고 있다. 민준이와 엄마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영화와 드라마가 만든 조혈모세포 채취 방법에 대한 국민의 오해

흔히 '골수' 기증이라고 알려져 있는 '조혈모세포' 기증은 희망자 모집기관 및 등록기관을 통해 이루어진다. 모집기관에서 기증 희망자의 혈액 5cc를 채취해 검사기관에서 조직적합성항원(HLA) 검사를 한 후 그 결과를 신상정보와 함께 "조혈모세포 정보시스템"에 입력한다.

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발생하면 조혈모세포 이식 조정기관에서 기증 희망자의 기증의사를 최종 확인하고, 만일 동의하면 혈액검사를 통해 기증 희망자 HLA형을 재확인해 최종적으로 환자 HLA형과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일치하는 경우 기증자 종합 건강검진을 통해 이식 적합상태인지 판단한다.

그리고 입원해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고 환자는 이식을 받게 된다. 조혈모세포 채취방법도 두 가지가 있다. 전신 또는 부분 마취 후 기증자의 골반(엉덩이) 뼈 속에 채취용 주사기를 삽입해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는 '골수 조혈모세포 채취법'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방법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방법으로는 전체 이식건수의 10%도 진행되지 않는다. 90% 이상은 전신이나 부분 마취를 하지 않고 3~5일간 촉진제를 맞은 후 헌혈과 동일한 방식으로 말초혈에서 조혈모세포를 채취한다. 영화배우 '최강희'와 '김지수'도 '말초혈 조혈모세포 채취법'으로 기증을 했다.

 

▲ 조혈모세포 채취방법인 '골수 조혈모세포 채취법'과 '말초혈 조혈모세포 채취법' 중 최근에는 무마취 헌혈방식인 '말초혈 조혈모세포 채취법'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영화배우 '최강희'와 '김지수'도 이 방법으로 기증했다. ⓒKONOS

 

 

 

조혈모세포 이식 대기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기증 등록자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의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는 2013년 기준 26만 명이 넘는다. 이 중 실제 이식이 이루어진 경우는 1996년 이래 누적 횟수로 3000건 가량이다.

 

 

 

▲ 국내 조혈모세포 누적 이식 대기자는 2100여 명에 이른다. ⓒKONOS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뜻있는 사람들의 기증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식이 이루어지는 비율은 현저히 낮다. 기증 희망자의 사망이나 국외 이주, 연령 초과로 기증 희망자 등록 현황에서 제외된 경우를 고려하더라도 낮은 수치다.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와 가족들은 유전자가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지 못하면 부작용 및 합병증이 대폭 증가하고 수현이 사례처럼 시간이 부족한 경우는 직접 공여자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 모집 및 조정이 제대로 되고 있나

기증 등록자가 26만 명을 넘어섰다는 통계에 비해 실제 이식까지 이루어지는 경우가 낮은 것은 어떤 이유일까?

기증 희망자는 2차 정밀 혈액검사를 위해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이식이 결정되면 최소 3일 이상 입원하고 추가로 며칠 휴식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기증자의 편의를 고려하는 측면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증자가 근로자인 경우 사용자 측이 유급휴가를 제공하고 기증자가 공무원인 경우 병가로 처리하는 등 편의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나, 그 외 기증자에게 실제로 주어지는 혜택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증은 분명 개인의 선의에 의해 시작된 행위이지만 기증 희망에서 실제 이식이 이루어지기까지 기증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현행 시스템은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또한 기증 희망자에게 기증의사를 물으면 기증을 거부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조혈모세포 이식 후 허리 디스크가 생긴다.", "임신을 못한다." 등 괴담 수준의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 당사자가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더불어 기증은 희망자의 동의만 있으면 되지만 실제로 입원해 기증을 할 때는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모나 배우자의 반대로 기증을 철회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식 조정기관의 사후 관리상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 조정업무를 하는 코디네이터가 기증 등록자와 접촉해 실제 기증까지 이루어지도록 설득을 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기증자의 편의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 현행 시스템에서 충분한 예산과 전문성 있는 인력이 투입되어야만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외국에 비해 기증 거부율이 높다는 것은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국가의 기증 등록자 모집 재원 확대와 양질의 조정업무 담보책 찾아야

환자와 가족을 두 번 울리는 조혈모세포 기증 거부에 대한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나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되어 온 바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이은영 사무국장은 "이식 대기 중인 환자들이 일치하는 조혈모세포를 95% 이상 찾을 수 있도록 국가가 재정 지원 규모를 확대해 모집 기증 등록자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면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한 기증자 본인이나 가족의 반대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장기적 관점의 대국민 홍보 계획을 세워 꾸준히 추진해야 하고, 이식 조정기관 전문성 담보를 위해 코디네이터 선발, 교육, 평가 등 조정업무 전반에 있어 총체적인 점검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관계자는 "매년 1만9000명의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자를 모집할 수 있는 비용을 국고에서 책정해 지원하고 있다. 올해에는 이미 확정되어 현재 집행 중이지만 내년 예산은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증액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해 재원 확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조혈모세포 이식 후 얻은 새로운 삶

조혈모세포를 이식받고 새로운 삶을 얻은 사람도 있다.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나 이식 후 퇴원하는 환자들이 이용하는 무균차량 '클린카'를 운전하며 자신의 투병 경험을 나누고 상담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충호(55) 씨. 그는 2006년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세 차례의 항암치료 끝에 2007년 4월 익명의 기증자로부터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았다.

 

▲ 2007년 익명의 기증자로부터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 완치된 이충호 씨는 백혈병 환우들을 위한 감염예방 전용 무균차량 '클린카'를 운전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2006년 10월에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연말연시를 병실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식으로 완치한 환자 및 가족들이 병실에 편지를 보내주었는데, 편지를 받고 나 또한 그들처럼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보았습니다. 또한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으면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저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한 기증자에게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나도 누군가에게 돌려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식 후 우습게도 철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이충호 씨. 가까운 지인들이 변화된 모습을 불편해 할 수도 있다며 걱정을 하지만 정작 그의 모습은 행복이란 무엇인지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