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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기사)

10년 생 살다간 예강이가 우리에게 남겨준 숙제는?

10년 생 살다간 예강이가 우리에게 남겨준 숙제는?
유족들 울리는 병원 측 대응 문제와 의료분쟁 관련 제도적 보완 필요

 

 

윤명주(한국환자단체연합회 객원기자)

 

 

▲ 예강이와 엄마 최윤주 씨 대학병원 응급실 도착 7시간 만에 사망한 9살 전예강의 건강한 모습. ⓒ윤명주

 


"예강이가 천사라서 10년 동안 저희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고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아요."

 

예강(만 9세)이 엄마인 최윤주씨가 환자단체연합회 사무실을 찾은 것은 담당 의료진의 처벌을 원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사망한 원인이 궁금해 견딜 수 없어서였다.

 

그리고 지난 4월 22일, 차마 예강이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어 언니, 동생과 함께 서야 했던 제10회 '환자샤우팅카페' 무대. 최씨는 예강이가 황망하게 떠난 것을 떠올리며 소리죽여 울었다.

 

 

응급실 간지 7시간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지난 1월 23일, 예강이는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숨을 거뒀다. 사흘 전인 20일 시작된 코피로 인근에 위치한 동네의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으로 혈관이 약해서 코피가 흐를 수 있다는 소견을 내놨다. 다음 날 찾은 이비인후과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

 

그런데 1월 23일 아침, 아이는 코피를 쏟고 축 처지면서 계속 자려고 하는 상태를 보였다. 오전 9시경 인근에 있는 서부병원에서 진찰을 받았고 의사로부터 큰 병원으로 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예강이는 오전 9시 50분경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피 검사 결과 혈액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고 헤모글로빈 수치는 4.1, 혈소판 수치는 9,000이었다.

 

"지나가던 한 여의사가 '아이 입술이 왜 이렇지? 수혈 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간호사가 안 했다고 하자 빨리 하라고 해서 적혈구 수혈을 받게 된 거에요."

 

 

▲ 요추천자 시술 모습 두 명의 1년차 레지던트(전공의)가 40분 동안 마취도 하지 않고 시행한 요추천자가 5회나 실패한 후 예강이는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했다. ⓒ윤명주


 

예강이가 적혈구(RBC) 수혈을 받게 된 것은 응급실에 도착한지 4시간 만이었다. 최씨는 예강이가 수혈한 지 5분이 지났을 때 의료진으로부터 뇌에 바이러스가 감염되었을 수 있다며 요추천자를 시술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이가 요추천자를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아서 망설였는데 전문의가 와서 한다고 해서 동의서를 썼어요. 예강이가 너무 무서워하고 그래서 안에 들어가서 손이라도 잡아주면 안 되냐고 했는데 그걸 거부를 하시더라고요. 그게 못내 아쉬워요."

 

그런데 실제로 요추천자를 한 사람은 전문의가 아니라 1년차 레지던트(전공의) 2명이었다.

 

요추천자를 처음 시도한 레지던트는 3회에 걸쳐 시술했으나 실패했고, 두 번째 레지던트는 2회 실패했다. 그러던 중 저혈량성 쇼크가 왔고 응급실에 온 지 7시간 만에 예강이는 사망했다.

 

 

'법대로 하라'는 병원 측 태도

 

병원에 간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건강했던 예강이. 유족들은 그런 예강이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병원에 담당의사 면담을 요청했다.

 

병원 측에서 마련한 자리에 나온 사람은 법무과 및 원무과 과장 등 7~8명이었다. 예강이를 시술했던 의료진은 만날 수 없었다. "의료진은 최선을 다했다", "요추천자 시술 레지던트의 시술 경험 등은 개인에게 알려줄 수 없다. 공공기관을 통해서 하라"는 것이 병원 측 답변이었다.

 

"예강이를 그저 가슴에 묻자고 했어요. 이건 달걀로 바위 치는 격이다. 절대로 의사들은 환자 가족에게 사과하지 않는다고 말했죠."

 

예강이의 이모를 비롯해 유족들이 바란 건 예강이를 담당했던 의료진의 설명과 진심어린 사과였지만 돌아온 것은 '법대로 하라'는 싸늘한 태도였다. 유족들이 병원 측의 답변만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수혈을 왜 4시간 후에 했는지 여부와 요추천자 시술이 환자 상태를 고려한 적절한 결정이었느냐다.

 

유족들에 따르면 응급실에 도착할 당시 예강이는 코피를 많이 흘려 기운이 없고 계속 자려고 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아이 상태가 좋지 않아 MRI 검사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보다 더한 고통을 요하는 요추천자 시술을 결정한 의료진의 조치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환자샤우팅카페'의 자문단으로 활동하는 권용진 서울시립북부병원 원장은 전문가로서 안타까운 부분을 지적했다.

 

"부검을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지만 출혈에 의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출혈이 일어날 수 있는 원인은 여러 가지 입니다. 당시 응급실 의료진의 조치가 적절했다고 해도 예강이의 생존은 장담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다만 헤모글로빈 수치가 4.1로 매우 낮게 나왔는데 왜 수혈을 4시간 후에 했는지, 뇌가 아닌 다른 부위의 출혈 가능성을 왜 생각하지 않았는지 의사로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해당 병원이 제공한 진단서상 사망원인은 '상세불명의 출혈'이다. 출혈 가능성이 있다면 출혈의 원인을 찾는 것도 응급실에서 신속하게 행해져야 할 조치 중 하나다. 예강이를 담당했던 의료진은 출혈 원인을 찾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원인을 찾았다고 해도 예강이가 무사히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의료진은 최선을 다했다'던 병원 측의 답변은 유족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자식을 먼저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의구심만 키웠을 뿐이었다.

 

 

의료분쟁 관련 제도적 장치 뒷받침 되어야

 

 

▲ 중재원 통지서 유족은 형사고발을 원하지 않고 사망원인을 알고 싶어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했지만 병원의 부동의로 각하되었다. ⓒ윤명주

 

 

지난 3월, 유족들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했다. 결과는 조정신청 각하. 피신청인 즉, 해당 대학병원의 조정 절차 참여 부동의로 인한 결과였다.

 

현행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르면 조정신청을 해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거나 14일간 아무런 답변이 없을 경우 자동 각하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저비용, 빠른 조정기간(90일 이내), 객관적인 감정구조(중재원 5인 감정부는 의사 2명의 의료감정을 현직검사, 의료전문변호사, 소비자권익위원 3명이 검증하는 시스템)를 특징으로 하는 의료분쟁조정제도의 최대 약점이다.

 

1심에 걸리는 기간 평균 2년 7개월, 수백만 원의 변호사 비용, 그리고 환자 본인이 의료사고임을 입증해야 하는 민사소송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민사소송도 그나마 고액의 소송비용을 감당할 경제적 능력이 되는 사람만 제기할 수 있다.

 

2012년 4월 의료진과 환자 등의 신속한 화해와 상생을 취지로 발족한 중재원이 의료분쟁에 있어 역할을 다하려면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다.

 

오제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의료분쟁조정신청을 하면 소비자보호원이나 언론중재위원회처럼 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자동 개시하되 일정한 요건에 해당할 때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현재 심의 중이다.

 


 

▲ 제10회 환자샤우팅카페 예강이 사연 환자샤우팅카페 무대에 선 예강이 엄마 최윤주 씨는 이 땅에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억울한 죽음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윤명주

 

"예강이 같은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 아이는 그렇게 갔지만 다른 아이들까지 그렇게 보낼 수는 없잖아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지 3개월. 아이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엄마 최씨가 '환자샤우팅카페' 무대에 서게 된 동기는 단순하다. 이 땅에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억울한 죽음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것. 그것은 10년이란 짧은 기간 생을 살다간 예강이가 우리 사회에 남겨준 숙제이기도 하다.

 

[출처: 환자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