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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기사)

[세계일보] <갈길 먼 환자 알권리-5회> “의사는 시혜자, 환자는 수혜자”… 사회 인식부터 바꾸자

[갈길 먼 환자 알권리] “의사는 시혜자, 환자는 수혜자”… 사회 인식부터 바꾸자

 

대학서 의료대화 교육의 활성화 시급

1차 의료 육성 대형병원 쏠림 차단을
양질의 설명 보상하되 책무감 높여야

 

 

2013.12.16 세계일보 윤지희·김수미 기자

 

 

의료현장에서 환자가 의사에게서 자신의 질병이나 치료법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그것을 중요한 의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의료 패러다임이 산업화를 거치며 의학에서 의료산업으로 바뀌고, 시민들의 권리의식은 높아졌지만 의사와 환자 관계를 여전히 ‘시혜자와 수혜자’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탓이다. 낮은 의료수가 등 의사들이 ‘3분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원인도 있지만 의사가 환자 눈높이에 맞춰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것을 의사나, 환자나 ‘어쩔 수 없는 문제’로만 여겨왔던 것이 더 큰 문제다.



◆의대 교육부터 바꾸자

울산의대 조홍준 교수는 15일 “우리나라는 환자가 궁금해도 제때 물어보기 어려운 상당히 불친절한 의료구조인데, 사회가 이것을 고민해본 적이 없다”며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의사에게 설명 의무를 부과한 반면 우리는 의사도, 국가도 의무라고 생각하지도, 해결해야 할 정책의제로 삼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학력도, 살아온 환경도 저마다 다른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진료 관련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시험을 보고, 전문가 코칭을 받는다고 갑자기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10년 전부터 각 의과대학에서 ‘의료대화’를 교육과정에 편입했지만, 의사들은 “전공과목에 매달리느라 의료대화 수업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고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여전히 성적 순으로 의대생들을 줄 세우는 대학 평가와 병원 선발시스템 탓이다.

조 교수는 “지인의 딸이 영국 의대에 다니는데, 학점을 다 따고도 커뮤니케이션 스킬(대화능력)이 부족하다고 학교에서 졸업을 안 시켜 줬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의대는 교육과정의 3분의 1이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것”이라며 “우리나라 의대도 현재의 의료대화 교육으로는 역부족이고 훨씬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연세대 의대가 학생들의 평가방식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인성·인문 교육 강화 방안을 내놓은 것은 의미있는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

한국 의료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온 ‘3분 진료’부터 바꾸고 충분한 진료시간이 보장돼야 한다는 데는 의사와 환자 모두 공감한다. 다만 적정 진료시간을 어느 정도로 하고, 어떤 방식으로 보장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의료계에서 양적진료 원인의 하나로 지적하는 의료수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의 충분한 설명과 상담이 이뤄지면 그만큼 보상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대형병원 쏠림을 막기 위해 가벼운 질환자는 동네의원으로 회송하도록 하는 등 1차 의료 활성화 방안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대한커뮤니케이션학회 이현석 이사는 “의료수가를 올리기보다는 환자가 원할 경우 5분, 10분 단위로 상담 비용을 내도록 하면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환자도 미리 질문을 준비해오고 꼭 필요한 것만 물어봐 진료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양질의 설명에 대해서는 더 보상해주되, 설명에 대한 의사들의 책무감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법인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는 “오스트리아처럼 징역형까지 강력하게 하지는 않더라도 치료 전 (환자에게서) 동의받을 의무 등 의사의 설명의무를 법제화해야 한다”며 “법원도 설명의무 위반 시 위자료나 손해배상액을 대폭 상향하는 등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박용덕 정책위원은 “의료기관 평가인증에서 지금처럼 추상적인 지표가 아니라, 치료과정에서 환자가 충분히 설명 듣고 만족했는지를 직접 평가하도록 하고 반영 비중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