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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기사)

8살 아들 죽인 의사보다 경찰이 더 미웠다

"8살 아들 죽인 의사보다 경찰이 더 미웠다"
[주장] 환자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의료소송...의료사고전담수사반 설치 시급

김연희(환자단체연합회 객원기자)


“경찰이 의료사고 신고접수만을 받는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에 나가고 관련자를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난 2013년 8월 26일 열감기로 전북 익산의 한 병원에 입원한 지 하루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김유비군. 아빠 김기후씨는 "입원한 당일 담당 의사가 회진만 했더라도, 유비 엄마가 간호사에게 이상하다고 말을 했을 때 귀를 기울이기만 했더라도, 아들의 사망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자식을 잃은 비통한 마음을 드러냈다. 지난 4월 22일 한국환자단체가 주최한 '제10회 환자 샤우팅 카페'에서의 일이다.

악순환만 되풀이 되는 의료사고 형사소송

 

[영상] 유비군의 아버지 김기후씨가 환자 샤우팅카페에서 일곱 살 아들을 의료사고로 잃은 사연을 토로

 

 

하늘이 무너지고 억울함에 미칠 것 같았다는 김씨. 이후 잘못한 것이 없다는 병원의 태도에 분노마저 일었다. 그러나 정작 그를 더욱 절망케 한 것은 형사고소를 하고 난 다음 경찰의 조사 과정이었다. 6개월 반이라는 시간이 소요됐지만 결론은 '내사 종결'로 끝났기 때문.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사고의 조사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김씨. 단순히 의사협회 자문을 얻는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억울함에 김씨는 좀 더 성실히 재조사할 것을 요구했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김씨의 이런 사례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현재 대한민국 의료사고 형사사건은 의사협회나 관련 학회 등에 감정을 의뢰하면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 또 감정 결과도 '의무 기록상으로는 과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음' 또는 '과실 없음'으로 회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은 그 감정서를 바탕으로 '불기소(혐의 없음)' 의견으로 송치하고, 검찰도 경찰 의견을 근거로 불기소처분을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인 셈이다. 오죽했으면 의료 소송을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 "의료사고가 나면 형사고소는 하지 마라"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니겠는가. 그만큼 형사고소가 의료사고 피해자에게는 아직까지 실익이 적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1년 5월 신우암 초기 판정을 받고 로봇 신장 절제 수술을 받던 중 십이지장 천공의 발생으로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을 받던 중 호흡기에 연결된 관이 빠져 사망이 이르렀던 탤런트 고 박주아씨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유족들이 신촌 세브란스병원 의사, 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 5명을 '허위진단서작성죄, 업무상과실치사죄, 의료법위반' 등의 혐의로 형사고소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이 됐다.

형사고소는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오히려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 민사소송에서 병원 측이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근거로 삼을 수 있어 환자 가족 입장에서는 불리해진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나라에서 의료사고가 나면 환자들이 그 이유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 관련 전문지식을 갖춘 경찰도 드물어서 조사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사 체계도 형사과 형사계, 수사과 조사계나 지능팀 등으로 중구난방이다. 그래서 의료사고 고소가 들어오면 부검을 하고, 의사협회에 감정의뢰를 요청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전담수사팀 설치는 공감, 논의와 연구가 더 필요

 

[사진] 고(故) 박주아 씨 의료사고 형사고소도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이 됐다.

 


과연 경찰이 깊고 폭넓게 수사를 했으면 뭔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확실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환자 가족들이 마음을 추스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유비 아빠 김씨는 "경찰 조사가 좀 더 성실했다면 세상에 대한 분노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며 "현재 아들을 잃은 슬픔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의료진과 경찰에 대한 불만이 그 아픈 마음을 갑절 이상 증가 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상] 유비군의 아버지 김기후씨가 환자 샤우팅카페에서 일곱 살 아들을 의료사고로 잃은 사연을 토로

 


법무법인 제현의 구영신 변호사도 "작년까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심사관을 했다. 조사하는 사람이 성실하고 전문성이 있으면 처음엔 책임의 유무에 대해 수긍하지 않던 환자 가족들도 기대치에는 모자라도 납득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고 말했다. 구 변호사는 "이는 결국 태도의 문제로, 전문성 있는 경찰이 좀 더 심도 있는 조사를 한다면 환자 가족들 마음에 생긴 응어리를 푸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도 서서히 의료사고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찰수사연수원의 이형근 교수는 "지난 2013년부터 경찰수사연수원은 의료사고수사과정(2013년 2회 실시, 2014년 3회 예정)을 운영하고 있다. 의료용어 및 의료체제의 이해, 관련 법리 및 판례의 숙지, 감정결과 해석 및 조사 질문 구성 등을 목표로 1주일간 의과대학 교수, 변호사, 검시관 등의 강사진이 의료사고수사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반갑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아직 '언 발에 오줌 누기'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적어도 사망 사건이나 사회적 큰 이슈가 되는 사건만이라도 유족이나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수준으로 조사할 수 있게 광역시나 도 경찰청마다 하나 정도는 '의료사고전담수사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경찰이 중립적으로 조사를 잘하기만 한다면 지금 의료계에 만연한 환자와 의사간의 불신을 줄이는 데도 일조할 것이다, 또 환자가족들의 억울함을 푸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사고전담수사반'도 '사이버수사대, 교통사고전담반'처럼 좀 더 광범위한 지원 체계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조직 신설이 만만치는 않다. 이형근 교수는 "해당 분야에 요구되는 전문성의 수준, 해당 분야와 관련된 사건의 양, 다른 분야와의 관계 등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며 "그래서 전담수사팀의 설치 여부 결정은 보다 심도 깊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왔다. 의료전담 수사팀 설치 문제는 정책적 판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의료사고에 대해 정부가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지 주목된다.

 

 

[출처: 환자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