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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노트)

의협신문의 ‘인터뷰’ 기사에 대한 소회

의협신문의 ‘인터뷰’ 기사에 대한 소회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기자와의 통화 그리고 예기치 못한 자극적 인터뷰 기사의 보도 경위

 

지난 7월 27일 의협신문은 “폭력이 무서우면 어떻게 의사하나”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톱기사로 보도했다.

 

휴가 첫날이라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시카고에서 근무하시는 의사 한 분께서 페이스북 메시지로 해당기사 링크주소를 보내 주면서 확인해 보라고 하셨다.

 

링크 주소를 클릭해 기사 제목을 보는 순간 ‘아, 당했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전날 의협신문 기자 A씨가 전화를 하여, 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발의한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는데 환자단체연합회의 입장이 궁금하다고 해서 아래와 같이 공식 입장을 간단히 설명했다.

 

시민사회단체·환자단체가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을 반대하는 이유는 첫째, 형법상의 폭행협박죄로 처벌하는 것보다 범죄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둘째, 응급의료에관한법률,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공무집행방해죄 등에 이미 가중처벌하는 다수의 법률이 존재한다. 셋째, 반의사불벌죄도 아니고 형량도 과도하게 높아서 형벌체계상 타 법률과 형평에도 맞지 않다.

 

대표로서의 공식입장을 설명한 후, 실로 몇 년 만에 통화를 한 해당 기자와 개인적인 차원에서 약 20분 동안 의료인 폭행협박 이슈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고, 통화 중 예민한 주제에 대해서는 서로 입장이 달라 다소간의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공식 코멘트를 마친 후,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대화라 생각했을 뿐, 사전 고지 없이 인터뷰 기사를 쓸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황당한 인터뷰 기사 보도 후 일어난 일

 

기사를 확인하고 바로 해당기자에게 전화하여, “사전에 인터뷰 기사 보도에 대한 동의를 구하지 않은 , 확대과장된 자극적인 제목과 기사 일부 내용, 오해를 유발할 있는 표현들”에 대해 항의했고, 기사 수정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해당 기자는 “사전에 ‘인터뷰’ 기사로 쓴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실수라며 거듭 사과를 한다”고 하면서, “그러나 자극적인 제목과 기사 내용 중 과장된 표현 등은 인터넷 매체의 특성상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 제목 수정은 어렵고 본문의 일부 내용만 삭제 또는 수정해 주겠다.”고 답했다.

 

기사 보도 후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나의 일부 발언에 대해 항의를 하거나 사과를 요구하는 의사분들이 계셨다. 또 서울시의사회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기까지 했다.

 

울산에서 의원을 운영하시는 의사선생님 한분께서는 기사를 보고 밤새 잠을 못 잤다며 의료현장이 예전과 달리 지금은 갑이 ‘환자’이고 을이 ‘의사’라고 하셨다. 큰 병원은 보안요원도 있고 응급실은 가중처벌하는 규정도 있지만 동네의원 진료실은 폭행협박의 ‘무풍지대’라면서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하셨다.

 

경위와 상관없이, 의도하지 않게 많은 의사선생님들께 마음의 상처를 드리게 된 점에 대하여 진심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글이 얼마나 큰 폭력이 될 수 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바로 서울시의사회에는 사과의 내용을 전달했고, 의협신문에 경위를 파악해 보시기를 요청 드렸다. 또 페이스북 등을 통해 연락 주신 분들께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서 오히려 페이스북 친구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인터뷰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의도와는 별개의 글 폭력을 만들어낸 의협신문의 경우, 편집국장께 연락하여 해당기사의 삭제 및 사과문 보도, 서울시의사회에 대한 해명 등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다시 같은 내용의 공문을 의협신문에 보냈으나 역시 묵묵부답이다.

 

문제가 있을 때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들여다 보라는 말이 있다. 이번 기회에 환자단체의 대표로서, 기자와 또는 공식석상에서 얘기할 때는 한마디 한마디에 얼마나 조심해야 할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이학영 의원의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 의료법 개정안이 아쉬운 이유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은 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처음 발의할 때 “법리적 검토를 충분히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은 지난 제18대 국회 때 두 번의 아픈 상처가 있는 법안이다. 당시 민주당 전현희 의원과 새누리당 임두성 의원이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가 시민사회단체·환자단체의 강력한 반대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 후 전현희 의원이 한번 더 발의했지만 이번에는 같은 당인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반대해 폐기되었다.

 

그 후 또 다시 전현희 의원이 응급실에서의 폭행협박을 가중처벌하는 ‘응급의료에관한법률’을 발의했는데, 이때는 시민사회단체·환자단체가 반대하지 않아서 통과되어 지금 시행되고 있다. 이학영 의원도 ‘응급실에서의 폭행협박에 대한 가중처벌법’과 같이 사회적 공감대와 형법체계상 다른 법률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개정안 내용을 만들어 발의했어야 했다.

 

이학영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료중인 의료인을 폭행 또는 협박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처벌한다.”

 

응급의료에관한법률,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공무집행방해죄 등 여러 법률이 의료인 대상의 폭행협박에 대해 가중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이미 두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학영 의원이 발의한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은 “한사람이 혼자서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지 않고 한번 진료중인 의료인에게 상처가 나지 않도록 단순한 폭행(때릴려는 제스처 등도 폭행임), 협박(심한 욕설 등도 협박임)한 경우에만 적용된다.” 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처벌 받게 되어 있다(비반의사불벌죄). 한마디로 중형이다.

 

만일 진료실에서 의사의 불친절로 인해 의사와 환자가 언성을 높이다가 서로 멱살을 잡고 싸웠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이학영 의원의 개정안에 의하면 이때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는데 반해 환자는 이보다 형량이 3년이나 높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또 의사와 환자가 서로 오해를 풀고 화해하는 경우, 의사는 처벌받지 않지만(반의사불법죄) 환자는 반드시 처벌 받는다(비반의사불벌죄). 이학영 의원 개정안의 치명적인 결함이다. 환자의 눈에는 ‘의사특권법‘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쨌던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이 국회에 발의된 이상 지금부터라도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환자단체가 사회적 논의를 통해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형평성 있는 합리적 결론을 내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은 의사와 환자 모두가 병원에서 안전하게 진료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의료계에서 적극적으로 제정운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사안이 의사와 환자가 병원내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의협신문의 기관지인 의협신문에 대한 유감과 나의 불찰

 

의사들의 회비로 운영하는 의협신문의 기관지인 ‘의협신문’은 환자와 의사가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에 관해 합리적인 토론을 하는 장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되지 못한 취재 태도와 확대과장을 통해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아무리 기관지라 하더라도 언론으로서 적절한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정리하며 의협신문 해당 기사를 다시 꼼꼼히 한번 읽어 보았다. 해당 기자가 처음부터 ‘인터뷰’ 기사를 쓸 계획이었음을 질문 순서나 내용을 보니 가늠할 수 있었다. 기자와의 대화 내용은 그 어떤 것이라도 기사화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왜 못했을까? 환자단체연합회의 대표라는 직책에 있다는 것을 망각한 나의 불찰이다. 기자를 탓해야 뭐하겠는가?

 

※ 의도하지 않게 많은 의사 선생님들께 상처를 드리게 된 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곳에 나의 사과의 마음을 전하고 기사 작성경위를 간단히 설명하는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