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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노트)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님,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입니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님,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작년 포괄수가제 이슈가 한창일 때 저에게 강한 어조의 메일을 보내셨는데 이번에는 저가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보낸 메일을 노환규 회장님의 블로그에 올린 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네이버에서 <안기종>으로 검색하면 이 메일내용이 가장 위쪽에 나오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도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7월 26일 금요일 오전 11시, 낯선 일반 전화번호가 저의 스마트폰에 찍혔습니다. 전화를 받을까말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오늘까지 마무리해서 국회에 넘겨야할 보고서가 있었고, 보통 1시간 20분을 서서 출근하던 지하철을 오늘은 운 좋게 앉아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저의 스마트폰에 번호가 저장되지 않은 전화는 대부분 아직 일면식이 없는 언론방송사 기자이거나 국회 보좌관 아니면 정부나 공공기관의 공무원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항상 저에게 한가지씩 일을 추가시키기 때문에 전화 받는 것이 늘 겁납니다. 그래도 일단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한의사협회 기관지인 의협신문의 기자라고 했습니다. 이 기자에게는 거의 몇 년만에 전화를 받은 것 같습니다. 의료인 폭행협박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는데 가중처벌법에 대한 환자단체의 입장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저 뿐만 아니라 시민환자소비자단체는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은 ‘(1) 형법상의 폭행협박죄로 처벌하는 것보다 범죄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고, (2) 응급의료에관한법률,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공무집행방해죄 등 이미 가중처벌하는 다수의 법률이 존재하고, (3) 반의사불법죄도 아니고 형량도 과도하게 높아서 형벌체계상 타 법률과 형평에도 맞지 않고, (4) 국민정서상 ‘의사특권법’으로 인식된다.”는 이유로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언론방송에 소개된 대부분의 의료인 폭행협박 사건은 가중처벌법 적용대상이 아니라 살인죄나 살이미수죄이고 이는 형법, 응급의료에관한법률,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의 적용대상으로써 이 법률에 의해 가중처벌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의 국회 통과를 의료계가 고집하기 보다는 (1) 의사와 환자간의 커뮤니케이션 개선을 통화 신뢰를 형성하고, (2) 관할 경찰서와 협조해 경찰관을 상주시키거나 청원경찰이나 보완요원을 배치하고, (3) 만취된 환자나 폭력적인 환자의 응급실이나 진료실에서의 폭행협박에 대해서는 의료기관이 반드시 고소해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원칙을 세우고, (4) 경찰이나 경찰의 수사과정 또는 법원의 재판과정에서 엄격하게 수사하고 재판하는 원칙을 세우도록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했습니다. 그것도 의사들끼리만이 아닌 환자와 의사가 함께 ‘폭행협박 없는 진료실 환경’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모두 7월 27일자 의협신문 기사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기사란 기자가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독자는 다르게 이해합니다. 의협신문 기자는 ‘인터뷰 기사’로 쓸거라고 사전에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기사’라고 했으면 위에서 얘기했던 공식적인 내용만 얘기했을 것입니다. 저는 기사에 세네줄 환자단체의 의견이 나가는 것으로 이해했고 그래서 편하게 오랜 시간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대로 ‘인터뷰 기사’로 실었다. 그것도 의협신문 톱기사로, 제목도 “폭력이 무서우면 어떻게 의사하나?”로 자극적으로 뽑았습니다.

 

지난 9년 동안 수많은 보건의료전문지 기자와 통화도 하고 인터뷰도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예민한 주제에 대해서는 간단한 멘트를 받기 위한 취재로 시작했다가도 내용이 좋아서 ‘인터뷰 기사’로 송고하고 싶을 때는 취재원에게 사전에 알려주어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예의이고 상식입니다. 더구나 인터뷰 중간에 자꾸 유도질문을 해서 “기사 다 써넣고 필요한 멘트 넣으려고 유도신문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자꾸 질문하면 전화 끓겠다.”고도 했는데 이런 내용까지 그대로 인터뷰 기사에 실었습니다.

 

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영역에 있어서 사람의 폭행협박은 근원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 음식 맛이 없다고 손님에게 폭행협박 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주인이 손님에게 절대 폭행협박을 당하기 싫다면 식당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폭행협박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직업군에 내포된 위험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형법에서는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입니다. 의료인도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폭행협박을에서 완전히 안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전에 폭행협박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의협신문은 “폭력이 무서우면 어떻게 의사하나?”라는 타이틀 제목으로 의사들이 많이 보는 의협신문 1면 톱기사로 낸 것이다. 저로서는 어처구니없습니다.

 

주말이라서 의협신문 사무실로 전화해도 통화가 힘들 것 같아서 다른 기자에게 연락해 해당 기자의 휴대폰 전화번호를 받아서 통화했습니다. 동일한 기사라도 표현에 따라 독자가 받아들이는 것이 다른데 의사를 너무 자극하는 내용으로 썼고, 설명의 이해를 위해 사례로 들은 것을 마치 핵심 주장처럼 타이틀로 잡고, 그것도 톱기사로 한 것은 너무 한 것 아니냐고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기자는 저의 의견을 기사에 정확하게 담으려고 노력했고 내용을 보면 다 들어가 있고, 타이틀은 인터넷매체 특성상 독자들을 많이 보게 하려면 자극적인 것으로 할 수밖에 없으니 널리 이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저가 원하면 추가 기사를 쓰거나 기사를 수정해 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의사들 많이 보게 하려면 자극적인 타이틀을 뽑을 수밖에 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는데 더 이상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 의사협회의 기관지로서 원래 의사를 대변하는 매체이고 의사들이 많이 보도록 기사를 써야 하는 의협신문인데 저가 항의를 한 것부터 잘못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올해로 환자운동 10년째입니다. 저는 매달 두세편씩은 언론사에 기고를 합니다. 언론방송사 인터뷰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이제 언론의 속성도 잘 알고, 기사의 내용에 따라 여론의 향방도 짐작할 수 있는 내공도 생겼습니다. 어떤 이슈나 아젠다 논쟁에서 저가 또는 환자단체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어떤 목소리를 내야 여론이 우리 환자단체에게 유리하게 전개될지도 이젠 잘 압니다.

 

저는 9년 전부터 지켜온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간지 기자이든 보건의료전문지이든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가 처음 백혈병환우회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운동 경력이 오래된 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보건의료전문지 기자에게 너무 잘해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기고해도 원고료도 안주고, 네이버 검색(이때는 ‘메디컬투데이’만 네이버 검색이 될 때였다)도 안 되어 매체 영향력도 적고, 의료공급자의 광고비로 운영되는 보건의료전문지의 속성상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9년 전 저가 백혈병환우회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저의 단체는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였고 이에 대한 설움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일간지가 메이저라면 보건의료전문지는 저의 단체처럼 마이너일수 있습니다. 지금은 네이버 검색이 되는 보건의료전문지가 메이저라면 네이버 검색이 안 되는 보건의료전문지가 마이너일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메이저/마이너 개념은 ‘매체 인지도’로 그냥 이해해 주십시오. 이렇게 마이너 매체의 기자들은 취재할 때 취재원들이 잘 협조를 해 주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저는 자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일간지 기자나 보건의료전문지 기자나 동일하게 대해 왔습니다. 원고료 안준다고 투덜대어 본적도 없습니다. 인터뷰 요청도 거절해 본적이 거의 없습니다. 더더욱 SNS가 발달한 지금은 ‘좋은 기사’이냐가 중요하지 매체의 영향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좋은 기사’만 있으면 많은 파워 트위터리안의 협조를 얻어서 SNS를 통해 퍼뜨리면 웬만한 일간지 못지않은 클릭수가 나옵니다. 그리고 실력 좋고 기자마인드 있는 훌륭한 보건의료전문지 기자들도 요즘은 정말 많습니다. 저는 이들의 전화 취재에 응하고 인터뷰 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이들을 통해 또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인터뷰 기사’를 쓸 계획이면서 마치 간단한 입장만 물어보는 것처럼 통화하고 의사들을 자극할 수 있는 타이틀의 ‘인터뷰 기사’를 내고 나중에 ‘인터뷰 기사’라고 얘기하지 않은 것은 죄송하다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수정해 주겠다고 하는 의협신문의 상황을 접하고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7월 28일 저녁 공중파 뉴스에서 피부시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조선족 환자가 흉기를 휘둘러 의사의 팔과 배 등을 6차례 찌른 고양시 일산의 한 성형외과 사건을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CCTV를 너무 좋아하는 방송의 속성상 모두 중요기사로 다루었습니다.

 

당연히 공중파 뉴스 기자들도 저희 환자단체연합회에 인터뷰를 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실제 몇 개 공중파와는 저가 직접 인터뷰를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가급적 저의 인터뷰가 방송에 나가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실제로 하나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방송보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대한의사협회 송형곤 대변인의 인터뷰만 나갔습니다.

 

원래 이러한 예민한 이슈 관련 뉴스는 의사협회가 나오면 당연히 환자단체나 시민사회단체 인터뷰도 나가는 것이 관행입니다. 그런데 저가 왜 저의 인터뷰 내용이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지 아십니까? 의사가 자신의 환자에게 칼이 찔려 생사를 해매는 상황에서 환자단체 대표의 인터뷰가 나가면 환자와 의사간의 불신만 조장될 뿐이고 합리적인 토론이 이뤄지고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중파 뉴스에서도 저의 인터뷰가 혹시라도 환자와 의사간 불신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는 저의 지적에 빼주었는데 의사협회의 기관지인 의협신문에서 사전에 알려주지도 않고 자극적인 타이틀의 ‘인터뷰 기사’를 내는 것은 신사적이지 않습니다. 어쨌든 언론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왈가불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희 환자단체연합회도 조만간 의사를 대변하는 의협신문처럼 환자를 대변하는 ‘환자리포터’를 창간할 계획이니까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저희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라 “폭행협박 없는 안전한 진료실 환경”을 만들기 방안을 마련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대한의사협회에 정식으로 제안합니다.

 

의협신문,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에서 의료인을 대상으로 폭행협박 경험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는데 저희 환자단체연합회도 “의료인 대상의 폭행협박 경험, 폭행협박 할 뻔한 경험, 폭행협박을 했거나 할 뻔한 이유, 의료인 폭행협박 근절을 위한 방안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겠습니다.

 

의료인 폭행협박 근절이 단순히 의료인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료받는 다른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의사들끼리만, 의사단체들끼리만 논의해서는 실효적인 방안이 나올 수 없고 환자와 함께 머리 맞대고 논의해야 합니다. 반가운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2013년 7월 29일

안기종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