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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기사)

“환자안전 사각지대…매년 최대 1만7천명 사망”

“환자안전 사각지대…매년 최대 1만7천명 사망”
이상일 교수, 병의원이 자발적 참여한 '환자안전 보고체계' 구축 주장
정부·의료계·학계·환자단체 "법적 보호장치·인센티브 필요" 한목소리

 

청년의사 2013.03.12 김진구 기자 


 

“매년 죽지 않아도 될 환자 5,000~1만7,000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환자안전에 대한 관심은 전무한 수준이다. 환자안전을 위해 병의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보고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울산의대 이상일 교수는 지난 11일 새누리당 신경림 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인증제 활성화 및 환자안전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해 이같이 주장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환자안전과 관련한 통계조차 없다.

 

그는 “지난 2012년 OECD는 우리나라에 환자안전에 관한 실태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며 “WHO가 2002년부터 환자안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다른 나라들이 환자안전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는 상반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우리나라엔 관련 통계가 없어 외국의 통계를 적용할 경우 연간 5,000~1만7,000명의 죽지 않아도 될 환자가 사망하고 있다”며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6,000명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여기에 기울이는 국가적 관심은 대단히 적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빈크리스틴 사건”이라며 “사건이 발생한 병원(경북대병원)의 경우 의료기관평가인증원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곳이었다. 인증제가 환자 안전을 담보해주는 도깨비방망이는 아니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보고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단 의무인증기관을 중소병원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심각한 사고는 반드시 보고하고 경미하거나 사고가 발생할 뻔한 경우는 의료기관이 자발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병의원의 보고내용을 법적으로 보호해주는 것”이라며 “병의원들의 자발적 참여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들의 참여를 이끌기 위해 보고내용을 법적으로 보호해주는 장치가 필수”라고 말했다.

 

 

항공기 사고 급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환자안전을 전공하고 있는 정헌재 교수는 환자안전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실수는 누군가의 부주의로부터 발생하며 그에 대한 처벌이 후속대책으로 따라왔다”며 “그러나 재발방지 효과는 미미했다. 때문에 미국 등 주요선진국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따라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재발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안전 사고가 발생했다고 가정했을 때 이 사고는 누군가 전적으로 잘못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고가 발생했다는 건 몇 단계의 방화벽이 뚫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누군가의 문제가 아닌 전체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항공기 사고를 예로 들면서 보고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교수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는 “항공기 사고는 최근 50년간 전세계적으로 매우 큰 폭으로 줄었다”며 “아주 작은 사고나 결함에 대해서도 반드시 보고하도록 했고 다음날이면 전세계의 동일 기종 항공기에 대한 점검이 이뤄지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어 “한 사건만으로는 시스템의 문제를 분석할 수 없지만 여러 사건이 쌓일 경우 하나의 패턴이 생긴다”며 “보고체계는 발생한 오류로부터 배우고 재발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도입 가능한 체계에 대해서는“나라별, 지역별로도 각각이 처한 의료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다”며 “병의원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환자안전을 잘 관리하는 곳을 일반 국민에게 발표하는 방식으로 병의원이 실질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다.

 

 

병원의 자발적 참여 이끌어내기 위해선

 

이어진 토론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학계, 환자단체 모두 환자안전 보고체계 마련에 동의하며 한 목소리로 병의원의 자발적 참여를 위한 유인동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의대 김소윤 교수(의료법윤리학과)는 “보고체계 마련을 위해 그 기반이 되는 기초연구를 당장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많은 인원과 비용이 투입되겠지만 이미 늦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며 “연구를 수행하고 보고체계를 구축할 전담기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나 대한병원협회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이선희 의료기술분석실장은 “일부 대형병원에서 자체적인 보고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걸 모으면 어느 정도 수준은 가능할 것”이라며 “다만 병의원 입장에서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들의 보고내용을 보호해주는 법적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급자 대표로 참석한 대한병원협회 이왕준 정책이사는 “보고체계가 또다른 위협이 되거나 강제적으로 시행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열악한 상황에 처한 대부분의 중소병원들을 위한 입체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보고 및 관리체계를 위한 전담조직 구성보다는 현재 운영 중인 인증제와 인증원에서 이를 담당하는 게 일관성이 있을 것”이라며 “이와 함께 참여하는 병의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인증원에서 아무리 잘 하더라도 환자안전이 100% 확보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의료인 중심의 시스템 구축에는 한계가 있다. 환자안전 관리체계 구축에 환자도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증원 석승환 정책개발실장은 “보고체계 마련과 관련 가장 중요한 건 의료기관의 수용력이다. 재정적 부담이 따르는 상황을 의료기관이 수용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곽순헌 의료기관정책과장은 비용 분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참석자 대부분이 보고체계 마련에 동의하고 있으나 비용이 얼마인지, 누가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지 등의 세부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면 의견이 갈릴 것”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연구용역이 완료 되는대로 조문화작업을 거친 후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인증원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별도의 법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인증원의 역할이나 위상변화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