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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의료 질 걱정한다며 의사가 수술거부?

의료 질 걱정한다며 의사가 수술거부?

[주장] 자충수일 뿐... 환자 생명 볼모 삼아서야

 

2012.06.13 오마이뉴스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l
지난 5월 22일 발표된 대한의사협회의 기자회견문. 이 기자회견문을 통해 대한의사협회는 "이것은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며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포괄수가제의 확대는 절대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대한의사협회 갈무리

 


포괄수가제, 국민에게 생소한 용어다. 의료서비스 양과 상관없이 질병별로 미리 정해진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이다. 최근에는 쉬운 풀이로 '진료비 정액제'라고도 부른다.

지금 의료계와 정부는 포괄수가제 효과를 두고 진실공방 중이다. 의료계는 포괄수과제를 시행하면 값싼 진료를 양산해 의료의 질이 떨어질 거라 주장한다. 또한 각종 편법 동원으로 건강보험 재정마저 오히려 악화될 것이라 게 의료계의 입장이다.

이에 반해 정부는 포괄수과제 시범사업 결과와 외국자료를 근거로 의료계의 주장에 맞서고 있다. 포괄수과제를 시행하면 의료의 질은 오히려 높아지고 과잉진료는 줄어들어 건강보험 재정도 건실하게 될 것이라고 정부는 반박한다.

의료계 진료거부는 '난센스'... 국민 납득할 반대근거 제시해야

국민은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최선의 진료를 위해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는 의료계나, 건강보험 재정 절약을 위해 포괄수가제를 찬성하는 정부·시민사회단체 모두 국민을 위해 반대하고 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환자단체는 만성질환관리제, 의료분쟁조정제도 등을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에는 명확한 비판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포괄수가제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의료계와 정부·시민사회단체 모두 국민을 위해 포괄수가제를 반대 혹은 찬성하는 것이고,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환자 입장에서 판단하기에는 이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료계가 생뚱맞게 내뱉은 '진료거부'라는 용어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얘기되고 있다. 지난 2일 <KBS 심야토론-포괄수가제 편>에서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은 진료거부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9일에는 대한안과개원의의사회가 다가오는 7월 1일부터 일주일간 수술거부를 하기로 결의했다.

이어 12일에는 외과·산부인과·이비인후과 개원의의사회 회장들이 모여 수술거부에 동참하기로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여기에 대한의사협회도 19일 수술거부에 대한 공식입장을 발표하겠다고 가세했다.

한마디로 가관이다. 의료계의 포괄수가제 반대 명분은 '환자에게 값싼 의료가 아닌 최선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문제 해결방법이 국민 건강에 위배되는 '수술거부'라는 것은 난센스다.

물론 의료계가 7월 1일부터 수술거부를 이행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주일간 응급수술을 제외한 수술거부 투쟁 등 의료계의 움직임은 포괄수가제 여론을 의료계에 유리하게 바꾸기 위한 여론형성용, 정부압박용 전략으로 판단된다.

최근 환자나 의료소비자의 주권의식이 상당히 높아진 시점에서 '수술거부'는 자폭행위와 다름없다. 수술거부를 통해 이번 포괄수가제 시행은 막을 수 있겠지만, 앞으로 수많은 보건의료정책을 설계해가는 과정에서 국민이라는 막강한 우군을 의료계는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근거중심의료'를 강조하는 의료계는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반대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현명한 방법으로 의료계가 포괄수가제 문제를 해결해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