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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대통령 꿈꾸는 자, 환자들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대통령 꿈꾸는 자, 환자들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기고] 건보 보장성 강화는 기본…환자안전법·호스피스제 도입해야

2012-07-08 프레시안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상임대표)

 

 

우리나라 모든 국민은 현재 환자이거나 예비 환자다. 감기 등과 같은 경증 질환에서부터 암, 중풍, 치매 등과 같은 중증 질환까지 우리나라 모든 국민은 질병에 걸려서 병원 신세를 지고 이 질병 때문에 끝내는 생을 마감한다. 그럼에도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앞다투어 장애인, 여성, 청소년 영역에 집중된 관심을 보이고 특화된 공약을 쏟아냈지만, 보건 영역은 늘 관심 밖이었다. 당연히 지난 17대 대선 때까지 환자단체는 대선후보들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18대 대선부터는 후보들도 장애인, 여성, 청소년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급격히 진행된 인구 고령화가 그 배경이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졌는데, 노후건강하게 보내고 싶은 열망은 누구나 품고 있다. 또 이런 열망을 차별 없이 충족시켜주는 것은 대통령의 필수 과제다.

환자단체 방문한 김두관 예비후보

이런 와중에 김두관 대선 예비후보가 환자단체연합회를 가장 먼저 찾았다. 지난 14일 김두관 후보는 캠프 회의실로 8개 환자단체 회원 30여 명을 초대해 간담회를 열었다. 10시부터 90분 동안 진행된 간담회에서 김 후보는 환자와 단체 대표자 12명의 얘기를 하나하나 메모하면서 80분 동안 들었다.

▲ 지난 14일 오전 10시부터 90분 동안 신동해빌딩 3층 캠프 회의실에서 진행된 <김두관 캠프 환자단체 초청 간담회>에서 김두관 대선 예비후보가 환자와 단체 대표들의 얘기를 메모하면서 듣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현대의학의 발달로 치료할 방법은 있지만, 보험적용이 되지 않거나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다발성경화증 환자 최은혜 씨, 신장암 환자 김흥기 씨의 부인, 다섯 자녀의 가장인 백혈병 환자 김영운 씨, 세 번째 타인 골수이식준비 중인 다발성골수종 환자 김규원 씨는 획기적인 건강보험 보장성 및 국고지원 확대를 요청했다.

항암제 '빈크리스틴'을 잘못 투여받아 사망한 9살 백혈병 어린이 정종현 군의 엄마 김영희 씨는 병원 안전사고로 제2, 제3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환자안전법(일명, 종현이법)의 제정을 눈물로 호소했다. (☞관련 기사 : 주사 한번 맞고 죽은 9살 종현이…"의료사고가 남 일?")

그 외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전용병원의 필요성, 에이즈 등 질병으로 말미암은 차별과 인권침해 금지, 완치된 환자들의 사회복귀 환경 조성, 신체장애인뿐만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내부장애인 범위 확대, 보호자 없이도 환자가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환경 조성 등에 대한 요청도 있었다.

"병원비 걱정 없고 안전사고 걱정 없는 대한민국 만들겠다"

환자들의 얘기를 모두 들은 뒤 김 후보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것이고, 모든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게 정부이지만 그래도 우선순위를 둔다면 소외계층이나 약자를 먼저 두어야 한다. 적어도 치료방법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도록 하겠고 환자안전법 제정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후보는 90분 동안 계속 이어지는 환자들의 가슴 아픈 얘기를 진지한 표정으로 듣다가 간담회가 끝나고 환자단체에서 준비해온 "Listen to patients(환자들에게 들어라)"가 적힌 소형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가 되어서야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김 후보는 간담회 장소를 떠나기 전에 "환자들에게 듣겠습니다."라는 친필사인도 했다.

▲ 간담회가 끝나자 김두관 예비후보는 환자단체에서 준비해온 "Listen to patients(환자들에게 들어라)"가 적힌 소형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친필사인을 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환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보건의료정책을 만들고 싶다면, 환자들에게 들어라"

김 후보 외에도 지금 여러 대선후보 캠프에서는 국민과 환자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다양한 보건의료정책을 만들고 있다고 들었다. 이들을 위한 팁(Tip)을 몇 가지 주고 싶다.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가 없게 하겠다는 공약은 상식적인 기본 공약이고 모든 후보가 준비하는 공약이다. "암, 희귀난치성 질환 등과 같은 중대 질병부터 치료비 걱정하지 않게 하겠다.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하고 본인부담액상한제를 통해 전 국민의 의료비를 낮추겠다." 등등 내용만 조금 다를 뿐이다. 이러한 공약만으로는 국민과 환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없다.

정책 고수(高手)라면 막대한 돈을 들여 환자를 많이 살리는 정책에 머물지 않고 죽지 말아야 할 환자가 병원 안전사고와 응급의료시스템 부재로 사망하지 않도록 하는 대선공약까지 준비해야 한다. 전문가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연간 예방 가능한 의료사고 사망자 수가 약 1만7000명에 이르고, 외상 중증센터를 포함한 응급의료시스템이 갖춰지면 연간 수만 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이는 획기적인 치료효능을 가진 수십 개의 항암제를 개발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환자안전법 제정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 정책 고수(高手)라면 막대한 돈을 들여 환자를 많이 살리는 정책에 머물지 않고 죽지 말아야 할 환자가 병원 안전사고와 응급의료시스템 부재로 사망하지 않도록 하는 대선공약까지 준비해야 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또한, 죽을 환자들이 잘 죽을 수 있도록 돕는 국가적 정책이 필요하다. 국립대병원과 공공의료원도 호스피스나 완화의료는 돈이 안 된다고 꺼리고 있다. 외국과 달리 전국 어디에도 호스피스 전용병원은 없다. 고령화 시대에 호스피스는 필수다. OECD 가입국의 위상에 맞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환경조성에 대한 공약도 꼭 필요하다. 아울러 치료가 끝난 환자가 직장, 학교 등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국가의 중요한 정책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대선후보들의 정책공약, 환자단체들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

환자단체들은 지금부터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대선 출마선언을 한 박근혜, 문재인, 김두관, 김문수, 손학규 등의 예비후보뿐만 아니라 출마를 심사숙고하고 있는 안철수 원장까지 대선 정책공약을 발표할 때마다 그것이 환자중심의 공약인지 환자단체는 철저히 검증할 것이다. 아울러 대통령 당선 후에도 공약을 철저히 지키는지도 확인할 것이다. 선거 때 잠깐 환자 비행기 태우는 공약은 더는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