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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국민건강보험제도가 넘어야 할 산 - 불법적 임의비급여

국민건강보험제도가 넘어야 할 산 - 불법적 임의비급여

2007.06.22 청년의사

안기종(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

 

건강보험제도는 치료비가 없거나 부족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치료비 부담을 전 사회가 분담하는 공적보험제도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공보험 중심의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의료급여수급권자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모든 국민은 소득에 비례해서 건강보험료를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건강보험료를 내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건강보험의 혜택을 충분히 받을 권리가 있고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 가입자가 건강보험의 혜택을 충분히 받도록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가입자가 피부로 느끼는 의료비 혜택의 만족도는 어떠한가?  건강보험공단이 2004년 건강보험 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건강보험 만족도에서 49.3%만이 건강보험제도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이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현재의 건강보험제도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보다 건강보험제도를 훨씬 늦게 도입하였고 건강보험료도 훨씬 많이 부담하고 있는 대만의 경우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만족도는 80%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2004년 7월1일부터 건강보험 적용 본인부담액이 3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초과액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해 주는 본인부담액상한제가 시행되었고 2005년 9월1일부터는 백혈병, 암등 중증질환의 경우 건강보험 적용 본인부담액을 20%에서 10%로 축소하는 중증질환등록제가 시행되어 암, 백혈병 등 중증질환 환자의 경우 치료비 부담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왜냐하면 암, 백혈병 등 중증질환의 의료비 가운데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비용보다도  비급여와 선택진료비가 너무 높기 때문에 건강보험 적용 본인부담액에만 적용되는 본인부담액상한제와 중증질환등록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가입자의 건강보험료 인상이다. 그러나 가입자들은 일관되게 건강보험료의 인상을 반대한다. 실제 건강보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중증질환 환자조차도 건강보험료의 인상에는 반대한다. 이는 건강보험으로 인한 의료비 절감의 혜택보다는 비급여로 환자가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건강보험제도가 나아갈 방향은 분명하다. 본인부담액상한제, 중증질환등록제 등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대만처럼 암, 백혈병 등 중증질환 환자에 대해서는 본인부담금을 면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의 보건의료분야의 정책 과제로서 몇 년 뒤에는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건강보험제도가 넘어야 할 큰 산이 하나 더 있다. 이는 의료기관의 임의비급여 징수 관행이다.  건강보험제도가 우리나라 건강보험 가입자들로부터 환영받고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절감시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의료기관의 임의비급여 징수관행을 근절하는 것이다.


작년 말 우리나라 백혈병 환자의 절반 이상이 치료받고 있는 모 대학병원의 고액 진료비 환불 사태도 임의비급여가 발단이 되었다. 백혈병 치료를 하고 있는 타 대학병원보다 문제가 된 모 대학병원은 비급여 치료비가 2배나 높았다. 이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사항을 비급여로 임의로 환자에게 징수하였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삭감을 피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환자에게 비급여로 받은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고 환자들은 건강보험 적용되는 급여사항을 비급여로 징수한 것은 환자들의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권리와 재산권을 침해하는 비도덕적인 행위라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의약분업 이후로 의료기관이 의약품 판매를 통해서는 이윤을 올릴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다.  의학적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급여기준의 비현실성으로 인해 최상의 환자치료를 위해 부득이 기준을 초과해서 의약품을 사용하는 의학적 임의비급여는 현재의 건강보험 시스템 상으로는 환자에게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비급여 징수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최대한 빨리 의학적 근거를 제시하여 보험급여기준을 개선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나 보험적용이 되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해서 받을 수 있는 급여사항을 병원이 삭감의 우려와 절차상의 불편으로 인해 환자들에게 비급여로 직접 징수한 불법적 임의비급여보험급여기준과의 변경과는 무관한 것이다. 이러한 불법적 임의비급여는 원칙대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해서 받아야 하고 삭감이 되는 경우 의학적 근거를 추가해서 이의신청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노력을 하여 환자에게 징수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렇듯 의학적 임의비급여는 의학적 근거를 제시하여 보험급여기준의 개선을 통해 건강보험적용이 되도록 하여야 하고 불법적 임의급여는 환자에게 징수하지 말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해서 받아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의료기관의 임의비급여 징수 관행이 근절되고 본인부담액상한제, 중증질환등록제도 등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제도가 작동될 때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가 가입자들에게 실질적인 치료비 절감 혜택을 주는 공적보험제도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