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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사 먹을 수 없다면 더 이상 약이 아니다.

사 먹을 수 없다면 더 이상 약이 아니다.

2008.03.28

안기종(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

 

 

우리는 97년 한국에 일치하는 골수를 찾기 위해 온 미공군사관생도 성덕바우만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로서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서 모국인 한국에서 일치하는 골수를 찾아서 골수이식을 받았고 그는 현재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성덕바우만이 2001년 이후에 만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렸다면 더 이상 골수이식을 받을 필요가 없다. 암세포만 골라서 죽이는 표적항암제인 글리벡만 먹으면 환자 90% 이상이 5년 이상 장기생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글리벡 내성이다. 기적의 항암제라고 불리는 글리벡도 전체 환자의 10% 정도는 내성이 생겨서 사망한다. 다행히 글리벡 내성환자에게 탁월한 효과가 있는 다국제 제약회사 브리스톨마이어스큅사(이하, BMS)의 차세대 항암제 ‘스프라이셀’이 작년 식약청 허가를 받았고 보험급여결정도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약가제도인 선별등재방식(Positive List)에 의해 건강보험공단과 BMS는 2개월 동안 약가협상을 벌였지만 올해 1월14일 약가협상이 최종 결렬되었다.


BMS는 스프라이셀 1정당 69,135원의 높은 약가요구를 굽히지 않았고 건강보험공단도 환자와 건강보험공단 재정 부담을 고려하여 약가인하 요구를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3월 14일 보건복지가족부의 약제급여조정위원회에서 다시 약가조정이 있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회의로 미루게 되었다.


최근 금값이 폭동했지만 순금 한돈의 가격은 128,370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백혈병 환자들이 먹는 글리벡 내성 치료제 스프라이셀은 하루 약값이 138,270원이다. 금보다 더 비싼 약, 그것이 바로 BMS의 스프라이셀이다.


BMS사의 약값 산정 논리는 너무나 단순하다. 스프라이셀이 글리벡보다 좋은 약이니까 글리벡보다 높은 가격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좋은 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구개발비가 많이 들어가고 더 많은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높은 약값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글리벡 약가는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수준이 월등이 높은 선진 7개국(미국·영국·프랑스·일본·이탈리아·스위스·독일)의 평균 약값을 기준으로 터무니없이 높이 책정되었고 다국적 제약회사가 신약 연구개발비보다는 2배 이상의 비용을 광고 판촉비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쉽게 말하,면 BMS는 스프라이셀이 글리벡 내성으로 죽을 백혈병 환자를 살리는 약이니까 환자 한명당 일년에 5천만원을 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도 안되는 논리이다. 제약회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막대한 이윤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효과가 좋으면서 부작용이 적은 약을 개발하여 질병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약품은 환자가 부담할 수 있는 적정한 수준의 가격으로 정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환자가 사 먹을 수 없는 약은 더 이상 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프라이셀 하루 약값이 14만원이다. 한달이면 415만원이고 일년이면 5천만원이다. 스프라이셀은 평생 먹어야 하는 항암제이다. 백혈병 환자의 본인부담금이 10%이니까 환자는 죽을때까지 매달 41만5천원씩 내어야 한다. 요즘 개인택시 운전기사도 한달 200만원 벌기가 쉽지 않다. 식당에서 아주머니들 한달 꼬박 일해도 120만원 받기 힘든 것이 우리나라 서민들의 현실이다. 가족중에 스프라이셀을 복용하는 환자가 있다면 그 가족들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저축도 포기하고 평생 약값을 대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글리벡 내성으로 현재 스프라이셀을 복용하는 환자들이나 내성의 위험 속에 살아가고 있는 글리벡 복용 환자들조차도 한결같이 스프라이셀 출시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환자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한 수준의 금액으로 약값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욱이 스프라이셀과 같은 글리벡 내성 신약으로 노바티스사의 타시그나가 이미 식약청 허가를 받았고 와이어스사의 보스티닙은 현재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그 외 임상시험을 준비중인 신약들이 몇가지 더 된다.


특히, 스프라이셀은 폐에 물이 차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지만 타시그나나 보스티닙은 이러한 부작용도 없다. 다시 말하면, BMS의 스프라이셀 시장 출시가 늦어지더라도 당장에 피해보는 환자들은 거의 없다. BMS는 여러 수단을 통해서 스프라이셀 약값이 빨리 결정되지 않으면 당장 환자들이 위험에 처할 것처럼 홍보하였지만 최근 전국 15개 대학병원에 문의해 보았지만 그러한 환자가 있다는 연락은 없었다.


이번 BMS의 스프라이셀 약가협상은 앞으로 줄줄이 쏟아져 나올 신약에 대한 약가결정의 시청각적 모델이 될 것이다. BMS가 이번 약제급여조정위원회에서 건강공단과의 결렬된 최종 협상 가격보다 높은 약값을 받게 된다면 제약회사들은 앞으로 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협상에 충실하기보다는 결렬을 유도하고 약제급여조정위원회에서의 약가결정을 선호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매년 1조원 이상 늘어나고 있는 약제비를 절감하겠다고 도입된 약제비 적정화방안은 무력화될 것이다. 이점 또한 약제급여조정위원회는 명심하고 스프라이셀 약가조정에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