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icle(칼럼)

경제위기의 시대, 거꾸로 가는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NGO칼럼] 경제위기의 시대, 거꾸로 가는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2009.06.05 내일신문

안기종(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


세계보건기구(WHO)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작금의 경제위기에 대해 1930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평가하면서 각국 정부에 저소득층을 포함한 취약계층의 건강과 의료이용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도록 권고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는 이런 세계보건기구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보건의료를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기 위한 정책보다는, '신성장동력'으로 여기며 돈벌이를 위한 시장으로 내모는 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 경제자유구역 내의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용, 비영리병원의 의료채권 발행 허용, 민간보험회사에 개인질병정보 제공 등으로 대표되는 의료민영화 정책을 융탄 폭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주장하는 의료민영화 추진 근거는 의료민영화가 되면 의료서비스 질이 높아지고 의료비도 줄어들고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되고 중소병원의 도산을 막을 수 있고 의료관광을 통해 외화도 벌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보건의료가 경쟁의 논리가 아닌 국민의 건강과 환자의 생명이라는 공공성이 특히 강조되는 영역이라는 것을 간과한 무지에서 나온 주장이다. 


의료민영화가 되면 ‘치료’라는 논리보다는 ‘이윤’이라는 논리가 앞설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늘어나고 병원 이용이 어려워지고 결국은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게 될 것이고 경제위기 시대에 가난한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다.


한번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현실을 꼼꼼히 돌아보자. 국민이 지출하는 보건의료 비용은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사회계층간의 의료이용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최근 경제위기로 건강보험료 체납자의 비율이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의 25%를 상회하여 심각한 의료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이 60%대에 불과하여 고액 중증질환에 걸리게 되면 어지간한 중산층도 가계가 휘청거리게 되고 결국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취약한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은 국민 대다수로 하여금 민간의료보험 가입을 필수품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이것이 2009년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현주소이다. 


그렇다면 경제위기 시대에 정부가 추진해야할 정책은 의료민영화가 아니라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국민의 건강과 환자의 생명을 담보하는 것이다. 경제위기 시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재기(再起)할 수 있는 든든한 밑천이라고는 ‘몸뚱아리’ 하나뿐이다. 만일 가난한 사람이 건강하지도 못하다면 이들은 더 이상의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세상에는 환자인 사람과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하던 사람들도 언젠가는 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에는 부자인 사람과 가난한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부자인 사람도 언제든지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환자 아닌 부자도 언제든지 가난한 환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경제위기 시대, 가난한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의 보장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안전장치와 같다.


가난한 환자들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이것보다는 질병에 걸렸을 때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더욱 두렵게 느끼고 있다. 정부의 존재이유는 소수의 대형병원과 재벌보험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국민을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경제위기 시대에 정부가 추진해야할 보건의료정책의 방향은 분명해진다. 이제 정부도 더 늦기 전에 ‘의료민영화’라는 거꾸로 가는 보건의료정책을 버리고 ‘모든 국민의 의료이용과 건강할 권리를 보장’하는 보건의료정책으로 뉴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