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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의협회장, 경만호는 적십자사 부총재 자격이 없다.

의협회장, 경만호는 적십자사 부총재 자격이 없다.

2009.06.19 오마이뉴스

안기종(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


5월에 대한의사협회장에 취임한 경만호 회장은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를 겸직하고 있다. 적십자사가 어떤 곳인가? ‘인류가 있는 곳에 고난이 있고, 고난이 있는 곳에 적십자사가 있다‘는 슬로건처럼 수많은 인도주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제적 NGO단체이다. 적십자사의 중점사업 중에 하나가 저소득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의료안전망 구축이고 이를 위해 적십자사는 전국에 6개의 적십자사병원을 현재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경만호 부총재는 지난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적십자사의 인도주의 정신에 명백히 반하는 망언(妄言)을 하였고 이로 인해 중증질환과 고액 치료비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암환자들과 차상위계층과 같은 가난한 환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주었다.


먼저, 경만호 부총재에게 묻고 싶다. 차상위계층의 자격요건을 알고 있는가? 차상위계층이 되기 위해서는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평균 수입이 159만원 미만이고 부동산을 포함한 총 재산이 9.500만원 미만이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을 충족해야 될 수 있는 차상위계층이 어떻게 경만호 부총재에게는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되는가?

 

정부에서 차상위계층에게 환자 본인부담금을 면제해 주고 긴급지원제도 등 각종 의료적 혜택을 주는 것은 고액의 의료비로 이들이 최하층 극빈자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고 이는 정부의 대표적인 사회적 의료안전망제도 중에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만호 부총재는 ‘차상위계층과 같은 가난한 환자들에 대한 정부의 의료혜택을 마치 선심성 정책으로 국고를 낭비한다’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하였다. 정부가 차상위계층과 같은 가난한 환자들에게 의료적 혜택을 더욱 확대하라고 독려하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비난할 수 있는가?  


그리고 세상에 암에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사람도 없고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누구도 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암에 걸리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치료비가 들어간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60% 수준인 우리나라에서는 왠만한 중산층이나 차상위계층도 암과 같은 중증질환에 걸리게 되면 고액의 치료비 때문에 계층 하락을 하게 되고 결국 최하층의 극빈자가 전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갑상선암으로, 본인의 아내는 백혈병으로 이미 수천만원의 치료비를 지불하였고 평생 동안 안 죽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월 20만원~40만원의 의료비를 지불해야 한다.


본인은 초등학교 6학년과 2학년인 2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백혈병 환자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저의 한달 급여로는 매달 지출되는 의료비 감당하기도 벅차다. 6학년인 첫째딸이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한달 42만원짜리 영어학원을 보내지 못해 구청에서 운영하는 한달 2만원짜리 화상영어을 듣게 하는 암환자 부모의 심정을 경만호 부총재는 아는가?


암 투병을 해본 경험도 없고 년봉 일억원 이상을 보장해 주는 의사자격증 소지자 경만호 회장이 어떻게 암환자와 가난한 환자들의 이러한 심정을 알겠는가?


또한 경만호 부총재는 ‘구매력이 없는 환자에게 국가가 필요 이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인터뷰 하였다. 그럼, 거꾸로 경만호 부총재에게 묻고 싶다. 이런 돈 없는 환자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돈 없는 환자 본인이 져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경만호 부총재의 말은 구매력 없는 환자는 죽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백혈병, 신장암, 뇌종양, GIST, 유방암, 폐암, 대장암 등 암환자들이 복용하는 항암제 비용은 년간 수천만원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런 환자들은 모두 죽어라고 하는 것인가?


또한 의사들은 암환자들을 연민 때문에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만호 회장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연민 때문에 암환자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보험재정을 투입하고 있다’고 인터뷰하였다. 이는 한명의 환자라도 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전체 의사들을 경만호 회장는 마치 연민에 사로잡혀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하는 부도덕한 집단인처럼 묘사하였고 이것은 의협회장으로서의 자질까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적십자사 부총재이면서 의협회장인 경만호씨의 이번 망언이 우리나라 적십자사 종사자 및 의사 전체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적십자사 종사원과 의사들은 경만호 회장과 달리 적어도 암환자나 가난한 환자들에게도 적정한 치료환경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인도주의 정신 실천의 모범이 되어야 할 적십자사 부총재이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까지 하고 의사가 된 경만호 의협회장이 암환자,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에 불안감을 주는 말을 언론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한 것에 대해 암환자의 한명으로써 분노할 금할 수 없고 적어도 이번 망언으로 인해 경만호 의협회장은 적십자사 부총재로서의 자격은 이미 상실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