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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진료비, 미리 내지 마세요.

진료비, 미리 내지 마세요. 

2010.04.12

안기종(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


재작년 이맘때 동네 의원에서 받은 종합검진에서 갑상선에 종양이 발견되었다. 의사선생님은 갑상선 종양은 대부분 물혹이고 악성은 드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러면서도 혹시 모르니까 대학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해 보라고 했다.


다음날 S대학병원에 가서 초음파검사 및 조직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의사선생님의 말과는 달리 갑상선암이었다. 진단 당일 5개월 뒤로 수술날짜가 잡혔고 그 사이 혈액검사, 심전도검사, 초음파검사, 조직검사 등 수술을 위한 사전검사를 여러번 받았다.


그런데 S대학병원 수납직원은 항상 당일 의료비뿐만 아니라 다음번 진찰료, 검사비 등도 미리 받았다. 진찰료는 1만원 내외라서 큰 부담이 없었지만 초음파검사비는 15만원이 넘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진료비영수증에 다음번 진찰료, 검사비 등도 모두 인쇄되어 발행되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없이 선납을 했다.


갑상선암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고 5일만에 퇴원했다. 퇴원을 위해 원무과에 총 의료비를 문의했더니 입원료, 수술비 등으로 총 180만원이 나왔다고 했다. 아내는 현찰로 준비해 퇴원 소속을 했는데 원무과 수납직원은 180만원에 추가로 6개월 뒤에 있을 외래 진찰료, 초음파검사비, 선택진료비까지 포함된 진료비영수증을 내밀었다.


신용카드를 집에 놓고 나온 아내는 혹시 퇴원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게 ‘현찰로 180만원 밖에 준비하지 못했어요. 신용카드도 집에 두고 왔고요’라고 했더니 수납직원은 ‘그럼 다음 진료비는 6개월 뒤 그때 오셔서 내세요’라고 대답했다.


예상밖의 대답을 들은 아내는 ‘다음 진찰료, 검사비도 미리 내야 하는 거 아니예요?’라고 묻자 수납직원은 고개를 들어 힐끔 아내를 쳐다보더니 ‘나중에 내도 돼요’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화가 나서 ‘그럼, 처음부터 나중에 내도 된다고 얘기해 주셔야죠?’라고 따지자 원무과 직원은 ‘앞으로 얘기해 드릴께요’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환자들은 병원에서 진료받은 후 다음번 외래 진찰료, 검사비 등을 미리 내신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병원에서 차기 외래 진찰료, 검사비, 선택진료비 등을 선납 받는 것은 불법이다. 미리 납부할 필요가 없다.


국민건강보험법시행령 제22조 2항과 의료급여법 11조의 4에서는 “요양급여비용, 의료급여비용, 비급여비용 외에 입원보증금 등 다른 명목의 비용을 청구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여 의료비 선납금 징수를 금지하고 있다.


병원은 차기 외래 진료비를 선납하면 다음 외래진료시 의료비 수납 불편을 해소하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도 신속한 진료가 가능해 편리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만일 차기 외래 진찰료, 검사비를 선납 받지 않으면 진료, 검사 당일 환자가 오지 않을 경우 다른 환자의 진료, 검사 기회가 상실되어 병원 입장에서는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비교적 소액인 진찰료 선납은 환자들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양전자단층촬영(PET), 초음파검사 등 한번에 수십만원하는 고액의 검사비 선납은 환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진찰, 검사 등의 진료행위와 달리 재료 투입이나 인력, 장비 사용이 전혀 없는 선택진료비조차 선수납하고 있는 것은 문제이다.


특히, 환자들의 불만이 높은 것은 진료비 자동수납기이다. 자동수납기는 차기 외래 진찰료, 검사비 등을 미리 지불해야 처방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아산병원 등은 자동수납기에 ‘모두 납부’, ‘나중에 납부’라는 기능을 추가하여 환자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병원은 그렇지 않다.


병원의 의료비 선납금 징수 관행은 의료소비자인 환자의 의료접근권과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신속히 개선되어야 한다. 우선 병원은 환자에게 차기 외래 진찰료, 검사비 등은  미리 지불할 수도 있고 다음번 외래 당일 지불해도 된다고 설명한 후 환자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동수납기에도 ‘모두 납부’, ‘나중에 납부’라는 기능을 추가해 환자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자들도 앞으로는 ‘병원의 의료비 선납 징수 관행이 금지’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당일 외래 진찰료, 검사비 등만 지불하고 다음번 외래 진찰료, 검사비 등까지 미리 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