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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더딘 항암제 건강보험 급여화, 환자는 답답하다.

[시론] 더딘 항암제 건강보험 급여화, 환자는 답답하다.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암이나 희귀난치성질환이 악화되어 죽음에 직면해 있는 중증질환 환자들에게 완치나 생명 연장이 가능한 신약이 개발되었다는 소식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을 것이다. 아마 한여름 삼복더위에 타는듯한 갈증에 시달리다 시원한 냉수를 마시는 그런 기분일 것이다. 이때부터 환자는 이 신약이 빨리 우리나라에 시판되어 먹게 될 날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게 된다.

 

문제는 이 신약이 우리나라 환자를 살리는데 사용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우선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설치된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이하, 급평위)를 통과해야 하고, 그 후 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과 해당 제약사가 협상을 통해 최종 약값을 결정해야 하고, 이것을 보건복지부가 최종적으로 고시한 뒤에야 환자는 건강보험이 적용된 신약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이 기간에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5년 이상이 걸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약품의 경우 식약처만 통과하면 비급여로 시판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유한 사람은 곧바로 신약을 구입해 완치되거나 생명을 연장하게 된다. 그러나 가난한 환자는 한 달에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천만원이 넘는 비급여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죽음을 기다린다. 중산층 환자의 경우에는 처음 몇 달간은 적금을 깨고 빚을 내어 약값을 내다가 그 이후부터는 집을 팔아 전세로 옮기거나 전세금을 빼 월세로 옮기는 과정을 거쳐 약값을 마련하고 그 다음부터는 신약 복용을 중단하고 죽음을 기다리게 된다.

 

부유한 환자들은 신약을 복용하며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돈이 없거나 떨어진 우리 가난한 환자와 중산층 환자들은 왜 죽어야 하냐며 한을 품고 정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과 공단을 원망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몇 달 안에 공단과의 약가협상이 끝날 것으로 기대하고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빚을 내어 신약을 구입해 먹었는데 협상이 결렬된 경우이다. 이 경우 소급되어 급평위 절차부터 다시 시작되기 때문에 그 사이 해당 중증질환 환자들은 거의 대부분 죽게 된다.

 

2010년 이후 다발성경화증, 다발성골수종, 혈소판감소증, 골육종, 흑색종, 골수섬유증, 악성림프종, 비소세포폐암, 유방암 등 10여개의 항암제가 식약처는 통과했지만 아직 급평위를 통과하지 못했거나 공단과의 약가협상이 결렬되어 비급여로 시판되고 있다. 한달 약값이 3백만원에서 1천만원이다. 1년이면 4천만원에서 1억2천만원이다. 왠만한 부자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이다. 천하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고 암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의 생명이라고 해서 달라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이들에게도 의약품의 신속한 접근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약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죽어야 한다면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에서 선호도 1, 2위를 다투는 핵심 공약이 암, 희귀난치성질환, 심장병, 뇌혈관질환으로 대표되는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4대 중증질환 의료비 국가책임제’이다. 보건복지부는 작년 6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 이행을 위해 ‘4대 중증질환 보장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필수의료에 해당하는 초음파검사를 2013년 10월부터 급여화하기 시작해 2014년에는 고가항암제 약제와 MRI․PET 등 영상검사, 2015년에는 각종 수술 및 수술재료, 2016년에는 유전자검사 등 각종 검사를 순차적으로 건강보험 급여화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2014년 올해 중점 분야가 고가항암제 약제의 건강보험 급여화이지만 현재까지 건강보험 급여화되어 고시된 항암제는 위험분담제가 적용된 것까지 포함해도 5개 정도에 불과하다. 의료비 폭탄으로 가계가 파탄 나고 계층이 하락하는 주요 원인이 고가의 항암제 약제비 부담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급평위에서 심의중이거나 공단에서 약가협상이 진행중인 항암제에 대해 신속한 건강보험 급여화로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을 보장하고 경제적 부담을 경감시키는 정책을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한다. 또한 항암제를 시판하는 제약사도 정부의 항암제 건강보험 급여화 정책에 보조를 맞춰 환자의 신속한 의약품 접근권 보장 차원에서 적극적인 약가인하조치 또는 위험분담제 적용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