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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임종기 환자 존엄사 허용 법제화 성공하려면

[주장] 임종기 환자 존엄사 허용 법제화 성공하려면

 

- 환자단체, 임종기 환자 대상 존엄사 허용하는 법제화 공감

- 존엄사 대리결정 허용하면 가족진술로 인정되는 의사추정 요건 강화 필요

- 핵심은 존엄사 남용 방지책 마련과 호스피스 완화의료 환경조성

 

2008년 2월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김할머니의 자녀들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대한민국에 연명치료 중단(일명, ‘존엄사’)의 허용여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존엄사에 대한 의사, 병원, 건강보험공단, 환자가족, 환자의 관점은 확연히 다르다. 의사의 관점에서는 치료가 불필요한 환자에 대한 치료 때문에 치료가 정말 필요한 환자에 대한 치료를 소홀하게 되어 치료 의욕을 상실하게 되고, 병원의 관점에서는 신규 중증질환 환자 치료가 연명치료 중단 대상 환자 치료보다 경제적면에서 불리하고, 건강보험공단의 관점에서는 불필요한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되고 환자가족의 관점에서는 과도한 의료비 부담이 발생하고 불필요한 간병 및 병문안으로 인해 사회경제활동에 큰 불편을 초래하고, 환자의 관점에서는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훼손될 수 있다.

 

모든 환자는 적절하게 치료를 받으며, 자신이 앓고 있는 상병(傷病)의 상태와 예후 그리고 시행할 의료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존엄하게 죽을 권리 또한 있다. 연명의료 결정권도 이에 포함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민과 환자에게는 아직까지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고 의료현장에서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갈등은 대부분 환자가족의 경제적인 부담에서 시작된다.

 

보건복지부는 김할머니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하자 2009년 12월 종교계, 법조계, 의료계, 시민단체 인사 15명으로 「연명치료중단 제도화 관련 사회적 협의체」(이하, ‘사회적 협의체’라 한다.)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했다.

 

김할머니 소송은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에서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승소판결이 났고 김할머니의 인공호흡기는 떼어졌다. 문제는 곧바로 사망할 것이라는 의료진의 예상과는 달리 김할머니는 2010년 1월 10일까지 생존하다가 사망했다.

 

「사회적 협의체」는 구성 후 총 7차례 논의를 거쳐 “치료 불가능한 말기 환자의 경우 인공호흡기 등의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고 최종 합의사항은 2010년 7월 14일 발표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인공호흡기를 뗀 후에도 김할머니가 8개월 더 살아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회적 합의안 도출에도 불구하고 존엄사 허용에 대한 사회적 여론은 사늘하기만 했다.

 

그로부터 2년 6개월 만인 지난 2012년 12월 21일 정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제도화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특별위원회’라 한다.)를 다시 구성했다. 2010년 「사회적 협의체」와 다른 점은 구성원에 있어서 그동안 배제되었던 환자단체가 처음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특별위원회」는 총 5차례 논의를 진행해 2013년 5월 20일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이하, ‘권고안’이라 한다.)을 발표했다.

 

「특별위원회 권고안」 발표 후 지난 10개월 동안 열띤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었고 2014년 7월 2일 보건복지부가 그 결과를 정리해 국가생명윤리정책위원회(이하, ‘국생위’라 한다.)에 보고하였고 「국생위」는 올해 하반기에 입법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연명의료 결정의 법제화에 대한 찬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제도화 방안으로 입법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위원회」의 권고안처럼 환자단체도 찬성하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가 2013년 회원 3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93%가 필요하다고 답변했고 필요하지 않다는 답변은 7%에 불과했다. 의료계, 법조계, 시민사회단체도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계, 특히 가톨릭계와 기독교계는 생명권의 본질을 침해하고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입법의 형태는 다수가 특별법 제정이 적합하다는 의견이다.

 

 

연명의료 결정의 대상환자 및 대상의료

 

「특별위원회 권고안」은 연명의료 결정의 대상환자를 “① 회생 가능성이 없고, ②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③ 급속도로 악화하는, 즉 임종기(臨終期)에 있는 환자”로 결정했다.

 

환자 입장에서 “① 회생불가능 ② 원인치료 무반응” 요건은 의료적 판단에 해당해 논쟁이 여지가 없지만 “③ “급속도로 악화하는, 즉 임종기(臨終期)에 있는 환자” 요건은 의료진의 판단 재량이 너무 넓게 인정되어 개선이 필요하다. ‘임종기 환자’의 대표적 상황 예시 등 환자나 환자가족이 의료진의 ‘임종기 환자’ 판단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연명의료 결정의 핵심은 ‘임종기 환자’의 판단에 있기 때문이다.

 

환자나 환자가족이 결정할 수 있는 연명의료의 대상을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과 같은 전문적인 의학 지식과 기술, 장비가 필요한 특수 연명의료로 제한하고 통증 조절이나 영양 공급, 물 공급, 단순 산소 공급 등 일반 연명의료는 중지할 수 없도록 했다. 타당한 결정이다.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환자의 의사(意思) 확인방법

 

환자가 자신의 현재 질병상태를 정확히 알고 난 뒤 결정한 연명의료의 명시적인 의사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임종기 환자가 현재 또는 곧 닥칠 죽음을 포함한 자신의 질병 상태에 대하여 충분히 정보를 가지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의사와 함께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POLST; Physician Order for Life-Sustaining Treatment)’가 있는 경우에는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의사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AD; Advance Directives)가 있는 경우 「특별위원회 권고안」에 따르면 이를 연명의료에 대한 명시적인 의사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이는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의사 추정으로 인정해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사전의료의향서(AD; Advance Directives) 또는 이와 동일시할 수 있는 수준의 문서, 녹취, 영상 등이 없고 연명의료에 관한 가족 진술만 있는 경우 「특별위원회 권고안」에 따르면 가족 2인 이상의 진술이 일치하는 경우 의사 2인이 환자의 의사로 추정하여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을 의사 2인이 환자의 의사로 추정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환자가족의 진술만으로 환자의 의사로 추정할 경우 의료현장에서 남용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연명치료의 중단의 대리결정 절차를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

 

김할머니 사건에서 대법원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자신의 상처를 남에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여름에도 긴 옷을 즐겨 입고 정갈한 모습을 유지했다는 등”의 가족의 진술을 토대로 “평소의 성격을 비춰볼 때 생명연장치료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의사를 표시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판결해 가족 진술만으로 연명치료 중단의 의사추정을 넓게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을 허용하지 않는 현행법령을 고려한 측면이 있고 만일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이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대법원도 연명의료의 의사추정을 이와 같이 폭넓게 인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국생위」에 보고된 내용에는 종교계와 환자단체의 우려를 반영해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을 환자의 의사로 추정할 때 무조건 허용하지 않고 일기, 유언장, 녹취록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는 절차를 추가했다. 이로써 가족들이 경제적 문제로 연명의료 결정을 남용하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의료계 일부에서는 연간 약 15만명의 임종기 환자들이 미래의 연명치료 중단을 대비해 객관적 자료를 남겨두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법제화되어도 극소수의 환자만 대상이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2013년 「특별위원회 권고안」은 2010년 「사회적 협의체 합의안」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적법한 대리인 또는 가족 전원의 동의에 의한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일기, 유언장, 녹취록 등 객관적 자료가 없는 경우에는 가족 2인의 일치된 진술을 환자의 의사로 추정할 것이 아니라 가족 전원의 동의에 의한 대리결정 절차를 거치도록 하면 된다.

 

또한 연명의료 결정이 법제화되면 사전의료의향서 등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의사를 표시하는 문서의 작성이 문화로 정착되어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 또는 환자의 의사로 추정되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다. 무엇보다 연명치료 중단 자체를 생명권 본질의 침해라며 강력히 반대하는 종교계의 의견을 고려한다면 연명치료 중단의 남용을 방지하는 제도의 도입에 의료계가 강력히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도 없고 환자의 의사 추정도 인정될 수 없는 경우 대리결정의 인정여부

환자의 명시적 의사표시도 없고,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도 없는 경우 적법한 대리인과 가족 모두가 합의하면 환자를 대리하여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최선의 조치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환자의 명시적 의사표시도 없고,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도 없는 경우라면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진의(眞義)가 무엇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법한 대리인과 환자가족의 합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을 허용하는 것은 환자의 진의를 왜곡할 위험이 크다.

 

다만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급속도로 악화되는, 즉 사기(死期)가 임박한 임종기(臨終期)에 있는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계속하는 것이 환자의 자기결정권 및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침해하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실제 상당수의 환자들도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명시적 의사표시도 없고,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는 근거자료도 없는 경우 대리결정을 허용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의 2013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무의미한 치료의 가능성에 대비해 연명치료 중단 요청을 할 의향이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82%가 “예”라고 답변했고 18%만이 ‘아니오’라고 답변했다.

 

우리나라 국민이나 환자의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인식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아주 낮은 형편이다. 의료현장에서 임종기 환자나 환자가족이 자신의 또는 가족의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기 보다는 경제적인 부담이나 가족들에게 심리적 고통을 주지 않으려고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자가족도 경제적인 여건만 허락한다면 연명의료를 계속해 환자가 조금만 더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과 환자의 일반적인 정서이고 현실이다.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명시적 의사표시도 없고,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는 근거도 없는 경우 비록 소수의 임종기 환자라고 할지라도 연명의료를 계속 하기를 희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와 남용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을 전제로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특별위원회 권고안」처럼 법정대리인이나 후견인, 성년후견인 등의 적법한 대리인 그리고 가족(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모두가 합의하여 환자를 위한 최선의 조치를 결정할 수 있고 이 경우에도 환자를 대신한 결정이 의사 2인(담당의사가 아닌 타 진료과 전문의 1인을 포함)이 합리적인지를 확인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적법한 대리인이나 환자가족이 없는 경우 대리결정 인정여부

 

문제는 고아, 독거노인 등 적법한 대리인이나 환자가족이 없는 경우의 대리 인정여부이다. 이 또한 적법한 대리인이나 환자가족이 있는 경우와 동일한 요건 하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문제는 고아, 독거노인 등에게는 적법한 대리인이나 환자가족이 없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대리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인정하려면 적법한 대리인이나 환자가족이 있는 경우와 동일한 수준의 공신력 있는 대리결정을 해줄 수 있는 자, 예를 들면 지방자치단체장, 병원윤리위원회 등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조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장, 병원윤리위원회 등이 환자를 대신한 결정도 의사 2인에 의해 합리적인지를 확인받도록 해야 한다.

 

「특별위원회 권고안」은 이 경우 ‘병원윤리위원회’에서 환자를 위한 최선의 조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고 병원윤리위원회의 환자를 대신한 결정이 의사 2인(담당의사가 아닌 타 진료과의 전문의 1인을 포함)에 의해 합리적인지를 확인받도록 했다.

 

문제는 ‘병원윤리위원회’는 현재 설치운영중인 의료기관의 수가 적고, 인적구성에 있어서 객관성이 부족하고, 회의가 자주 열리지 않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종교계와 환자단체는 고아, 독거노인 등 무연고자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이들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최종 권한을 ‘병원윤리위원회’에 부여하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했고 정부에 적극적인 제도보완을 요구했었다.

 

이번에 「국생위」에 보고한 내용에는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자의 인적사항을 관리하고, 무연고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여부를 결정하는 각각의 병원윤리위원회를 감독하기 위해 별도기구로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가칭)”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가칭)”이 현재 ‘병원윤리위원회’가 갖고 있는 단점들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개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연명의료 결정 법제화보다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환경조성이 더 시급

 

「특별위원회」의 권고안에는 “환자가 연명의료 대신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할 수도 있도록 정부와 사회는 적극적으로 제도를 마련하고 지원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는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전국 43개(상급종합병원 12, 종합병원 21개, 병원 4개, 의원 6개)에 불과하고 병상 수는 대상 환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렇듯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할 수 없는 의료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적법한 대리인 또는 가족 전원의 동의에 의한 임종기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의 대리결정을 허용할 경우 자칫 남용의 위험이 크다. 또한 현재 살아있는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충분한 설명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과연 임종기 환자나 환자가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뤄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대리결정의 제도화 도입에 대해 종교계와 일부 환자단체들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특별위원회」의 권고안을 계기로 촉발된 연명의료 결정 법제화 논의가 의사, 병원, 건강보험공단, 환자가족의 임종기 환자에 대한 의료적, 경제적, 도덕적 책임을 법적으로 벗어나게 해주는 하나의 면피용이 아니라 호스피스-완화의료 환경조성과 함께 환자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실제적으로 보장하는 도화선(導火線)이 되기 바란다.

 

 

환자리포트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