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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의료소송 백전백패, 이젠 옛말

[칼럼] 의료소송 백전백패, 이젠 옛말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의료소송” 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백전백패,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의료소송이 그만큼 힘들고 승소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옛말이다. 의료소송도 초기대응만 잘 하면 환자도 충분히 승소할 수 있다. 최근 승소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2년 22%였던 환자 승소율이 2013년에는 31%까지 올랐다.

 

의료사고 피해자는 고액의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소비자보호원, 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의 피해구제 공공기관에 조정이나 중재신청을 하면 변호사나 공무원들이 증거 수집이나 증인 확보를 모두 다 알아서 해 주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렇게 변호사나 공무원에게 모두 맡기고 뒷짐 지고 있다가 큰 경제적 손실이나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변호사는 의료사고 피해자의 진술과 제공된 증거로 준비서면을 쓰고 법정에 출석해 소송을 수행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증거자료 수집과 증인 확보는 전적으로 의료사고 피해자의 몫이다. 변호사가 억울한 의료사고 피해자를 위해 발품 팔면서 증거자료를 수집하고 증인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다. 현실은 전혀 그렇게 않다. 그렇다면 환자가 의료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금부터 꼼꼼하게 한번 살펴보자.

 

첫째, 의료사고가 의심되면 가장 먼저 병원에서 의무기록지 사본을 발급받아야 합니다. 병원에서 의료사고를 은폐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의무기록지를 위조하거나 변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속한 의무기록지 사본 확보가 의료소송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사건경위를 날짜, 시간 순서에 따라 가급적 자세하게 기록해야 한다. 환자 자신이나 환자가족이 작성한 사건경위서를 병원에서 작성한 의무기록지와의 대조를 통해 의무기록지의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의료사고 장소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면 법원에 CCTV 테이프의 증거보전 신청을 해야 한다. 병원에게 불리한 내용이 촬영되어 있으면 삭제나 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사, 간호사, 목격자 등 의료사고의 정확한 경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을 최대한 빨리 녹취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고 병원에서 미리 의사, 간호사 등과 병원에 유리하도록 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환자가 의료사고로 사망하면 부검을 실시해야 한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하여 부모에게 받은 신체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통적 유교문화와 오랜 투병으로 고통 받은 환자에게 죽어서까지 또 칼을 댄다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 때문에 유족들이 선뜻 ‘부검’에 동의하지 못한다. 그러나 부검만큼 의료진의 과실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의료사고 사망시에는 부검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여섯째, 의료진을 폭행, 비방하거나 병원을 불법점거하면 폭행죄, 명예훼손죄, 업무방해죄 등으로 오히려 형사고소를 당해 전과자가 될 수 있다. 병원 앞에서 1인시위나 집회를 할 때도 병원 상호나 의료진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야 하고, 사전에 집회신고를 하는 등 합법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시하거나 사회적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어쨌든 의료진을 폭행, 비방하는 행위나 병원을 불법점거하는 행위는 절대적으로 삼가 해야 한다.

 

일곱째, 민사소송 진행 중에는 형사고소 제기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손해배상을 목적으로 하는 민사소송과 달리 형벌집행권을 발동시키는 형사고소는 엄격한 증거자료와 명백한 증언이 있어야 유죄로 인정된다. 그런데 의료사고는 대부분 의료진의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해 발생되고 고도의 의학적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입증이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의료사고는 형사고소가 되더라도 대부분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받게 되고 이는 민사소송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유죄의 명백한 증거나 증인이 없는 경우라면 형사고소는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난 뒤 승소하면 그때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출처: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