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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칼럼] 진상규명하다 전과자가 되는 피해자 가족... 의료사고 1인시위 10가지 원칙

오른발 대신 왼발 자른 의사... 차라리 낫다.

“진상규명하다 전과자가 되는 피해자 가족... 의료사고 1인시위 10가지 원칙”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병원은 환자의 질병과 상처를 치료해 생명을 구하는 기적의 장소이다. 한명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수많은 의사, 약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의 보건의료인과 행정직원이 참여한다. 환자 치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하다보니 이 중 어느 한 사람의 사소한 실수에도 환자의 생명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를 보통 “의료사고”라고 한다. 보건의료인이 신이 아닌 이상 실수는 피할 수 없는 보건의료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보건의료인이 피해자나 유족에게 사고원인을 설명하고 진심어린 사과와 적정한 경제적 보상을 하면 보통은 원만하게 해결된다. 자동차사고처럼 의료사고 또한 보건의료인이 고의로 일으킨 것도 아니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의료사고 관련 의료현장 이야기 - 회유, 협박, 형사고소의 악순환

 

그러나 의료현장은 그렇지 않다. 절단 예정된 오른쪽 발이 아닌 왼쪽 발을 절단했다거나 맹장이 아닌 신장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든지 하는 등 의료사고가 명백한 경우에는 해결과정이 의외로 간단하다. 의료사고 발생 사실이 언론이나 방송에 보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병원에서 먼저 나서서 신속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료사고의 개연성은 높지만 명백하지 않는 경우이다. 이 경우 상당수의 병원들은 피해자나 유족들의 의료사고 주장을 강하게 부인하고 법대로 하라고 엄포를 놓는다.

 

경제적 형편이 좋아서 1심만 5백만원~1천만원 하는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되는 사람은 변호사를 선임해 의료소송을 진행한다. 2012년 4월 8일 이후 발생한 의료사고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도 가능하지만 병원이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무응답하면 조정신청이 자동 각하된다.

 

이렇게 되면 가난한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은 의료소송도 못하고 의료분쟁조정제도도 이용하지 못하게 되어 진실 규명이나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면 대부분의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은 현수막과 피켓을 만들어 병원 앞에서 1인시위나 집회를 시작한다. 그러나 몇 날이 못 되어 이들은 병원으로부터 명예훼손죄, 업무방해죄 등으로 형사고소를 당해 상당수는 전과자가 된다. 이것이 의료사고와 관련된 우리나라 의료현장의 현 모습이다.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이 병원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병원 직원 1~2명이 나와 감시하다가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다가 나중에는 7~8명이 감시할 때도 있다. 병원 직원들은 1인시위 하는 피해자나 유족에게 어떨 때는 회유하고 어떨 때는 협박을 하면서 시위의지를 꺾으려고 하거나 형사고소를 위해 폭행이나 명예훼손을 유도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경찰까지 불러 겁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합법적인 1인시위나 집회를 하고 있다면 전혀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이 전과자가 되지 않으면서 사회적 관심도 불러일으키는 병원 앞 1인시위 방법에 대해 한번 꼼꼼히 살펴보자

 

 

□ 병원 앞 의료사고 1인시위시 지켜야할 10가지 원칙

 

 

 

 

[사진] 전예강 어린이 유족이 만든 의료사고 블로그 “난예강이”(출처: 난예강이 블로그)

 

 

첫째, 의료사고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는 블로그․카페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피해자 소개, 사건개요, 주요논점, 병원․정부․국회에 대한 요구사항, 의무기록지 등 의료사고 관련 자료를 제3자적 입장에서 한눈에 쉽게 이해되도록 게시해 놓는 것은 중요하다. 보건의료인이나 언론방송사 기자들은 의료에 있어 비전문가인 환자나 환자보호자가 의료사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의료사고라고 생떼 쓰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블로그․카페를 만들어 여기에 의료사고 관련 자료를 공개해 놓으면 객관적인 검증도 가능하고 양심적인 보건의료인이나 이전의 유사한 경험을 한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의료사고의 진상규명과 소송에 도움이 될 자료나 정보를 보내 주기도 한다. 또한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포탈사이트 검색란에 의료사고 피해자 이름인 <홍길동>을 치면 바로 블로그․카페에 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둘째, 1인시위나 집회를 할 때 사용하는 현수막이나 피켓에 해당 병원의 상호나 보건의료인의 실명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명예훼손죄는 허위의 사실 뿐만 아니라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성립하기 때문에 절대 해당 병원의 상호나 보건의료인의 실명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 해당 병원 앞에서 1인시위나 집회를 하면 일반 대중은 의료사고 가해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구지 형사고소의 위험까지 감수할 필요는 없다. 다만 병원을 특정하지 않는 상호 표기는 가능하다. 예를 들면 “서울대병원”을 “서울 종로구 S병원”으로 표기하거나 “경북대병원”을 “대구 중구 K병원”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에 이니셜 “S”로 시작되는 병원이 여러 개이기 때문에 상관없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을 “서울 종로구 S대학병원”으로 표기하면 안 된다. 서울 종로구에 이니셜 “S”로 시작되는 대학병원은 “서울대병원” 한 개 뿐이어서 바로 특정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이유로 “경북대병원”도 “대구 중구 K대학병원”으로 표기하면 안 된다.

 

 

 

[사진] 전예강 어린이의 유족이 만든 의료사고 1인시위 피켓(출처: 최윤주)

 

 

셋째, 1인시위나 집회는 언론방송이나 SNS를 통해 사회적 여론을 조성하는 도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1인시위나 집회를 할 때는 반드시 1인시위나 집회 내용을 사진 또는 영상과 함께 블로그․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등의 SNS을 통해 동네방네 알려야 하고 언론방송사 기자에게 취재도 요청해야 한다. 몇 일, 몇 달 동안 1인시위나 집회를 했는데도 언론방송에 전혀 보도가 되지 않았거나 SNS 활동을 통해 인터넷 포탈사이트에 전혀 검색이 안 된다면 1인시위나 집회는 하나마나이다. 1인시위나 집회는 개인적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넷째, 10일 이상의 장기간 1인시위를 할 계획이면 관할 구청에 가서 집회신고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병원 앞 동일한 장소에서 장기간 1인시위를 하면 병원의 이미지에 손상이 갈수 있고 이로 인해 병원 이용 환자수가 줄어들어 경제적 손실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1인시위 때 구호를 한번 외친 것이나 1인시위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 위해 함께 온 동료가 있으니 불법집회라는 등 갖가지 꼬투리를 잡아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죄 또는 업무방해죄로 형사고소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어차원에서 집회신고를 하고 합법적인 장기간 1인시위를 하는 것이 안전하다. 집회신고는 주최자 본인 또는 위임장을 받은 대리인이 관할 구청 민원실에 가서 하면 되고 처리기간이 2일 이상이기 때문에 집회 3일전에 신고서를 접수해야 하며, 집회장소가 어디인지 약도로 정확하게 지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

 

다섯째, 1인시위를 할 때는 시위자 이외 다른 한사람이 영상 또는 사진 카메라를 준비해 100m 밖에서 병원 직원들의 불법행위를 반드시 감시해야 한다. 병원 직원들이 현수막을 걷어가 버리거나 피켓을 빼앗아 부숴 버리는 경우도 있고 시위자를 위협하거나 손으로 밀치기도 하기 때문에 불법행위 채증을 위해서라도 시위자 이외 반드시 따른 한사람이 동행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1인시위자에게서 100m 이상 떨어져 병원 직원들이 알지 못하게 감시하는 것이다. 100m 이내에서 공개적으로 감시하면 2인 이상이 집회를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불법집회라면서 형사고소를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1인시위 중에 병원 직원들이 와서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경우 “헌법에 보장된 1인시위을 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세요.”라는 짧고 단호한 말로 경고한 후 침묵하고 1인시위에만 집중해야 한다. 병원 직원들의 자극하는 말과 행동에 흥분해 폭행․협박을 하거나 병원 상호나 보건의료인 실명을 거론하며 모욕이나 명예훼손을 하면 절대 안 된다.

 

 

 

[사진] 병원 응급실에서 7시간만에 사망한 9살 전예강 어린이 엄마 최윤주씨가 병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최윤주)

 

일곱째, 1인시위 중 병원 직원들이 파출소에 신고해 경찰차나 경찰관이 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1인시위 중이고 병원 직원들이 1인시위 방해하지 않도록 조치해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여덟째, 1인시위자가 자신을 감시하는 병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접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촬영해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경우 병원 직원들이 초상권 침해라며 강하게 항의하기 때문에 시위자 이외 다른 한명의 감사자가 100m 밖에서 병원 직원들의 불법행위를 몰래 사진으로 찍거나 영상으로 촬영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병원 직원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홉째, 언론방송사가 1인시위 관련해 특별히 관심을 갖는 날짜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심해야 한다. 언론방송사는 아무 때나 1인시위를 보도는 것이 아니라 1인시위 처음 시작하는 날, 10일, 30일, 100일, 200일, 300일, 1년, 2년, 1000일, 3년, 4년, 5년 등대중적 관심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는 이러한 특정한 날짜에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언론방송사에서 특별히 관심을 갖는 날짜가 다가오면 사전에 언론방송사 기자에게 1인시위 취재를 요청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열번째, 1인시위로 큰 사회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보도할 언론방송 매체를 지혜롭게 선택해야 한다. 매체 파급력은 공중파 뉴스나 시사프로그램, 일간지, 인터넷 언론매체, 보건의료 전문지 순서이고 언론방송 매체 선택시 이를 잘 고려해야 한다. 언론방송의 속성이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한번 보도가 되면 기사나 방송 소재로서의 가치는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중파 방송이나 일간지만 고집하다가 또는 이곳저곳 매체를 기웃거리다가 결국 보도 타이밍을 놓쳐 낭패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시간과 지면의 제약으로 사건만 간단하게 소개하는 단신 형태의 공중파 방송이나 일간지보다는 이러한 제약이 없고 의료사고 내용과 주요논점을 심층적으로 보도할 수 있는 인터넷 언론매체를 선택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할 때도 있다. 양질의 기사가 만들어지면 페이스북․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더 큰 사회적 관심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병원 주위에 기생하는 “의료사고 브로커” 특히 주의 필요

 

글을 끝내기 전에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하고 싶다. 병원 앞에서 1인시위나 집회를 하는 경우 간혹 “소송에서 이기도록 도와주겠다. 또는 병원과 얘기해서 합의금을 많이 받도록 해주겠다.”며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1인시위나 집회를 좀더 자극적인 방법으로 하라고 유혹하고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에 해당하는 원색적인 비난 문구로 현수막이나 피켓을 만들도록 조언한다. 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자신도 의료사고 피해자였지만 자신만의 비법으로 병원에서 고액의 합의금을 받아 냈다며 자랑하고 자신의 사비를 들여가면서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을 전심으로 돕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지마라. 이들은 ‘의료사고 브로커’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의료사고 피해자와 병원 사이에 격한 대립을 유도해 합의를 하게 만들고 이렇게 받은 합의금의 10~30%를 사례비로 받는 것이다. 이들은 “양의 탈을 쓴 늑대”다. 의료과실이 확실해 병원으로부터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의료사고인데도 의료사고 피해자에게는 90% 이상 패소할 사건이지만 자신이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고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자신은 절대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며 강조하면서 오히려 사비까지 들여가면서 전심으로 도와준다. 그런데 의료사고 피해자가 합의금을 받을 때 쯤 되면 자신의 가족 중 누군가가 중병에 걸려 긴급히 치료비가 필요하다거나 보증 선 친구가 부도가 나 자신이 신용불량자가 될 상황에 처했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으로 사례비를 주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고단수 사기꾼이다.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두 번 상처 주는 병원 주위의 브로커들에게 속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기 바란다.

 

나는 올해 10년째 환자운동을 하고 있다. 아들이, 배우자가, 부모가 의료사고로 사망하거나 중장애를 입어서 병원과 힘든 법정소송을 하던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이 오히려 병원의 형사고소로 전과자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수없이 지켜보았다. 그래서 의료사고와 관련해 병원 앞에서 1인시위나 집회를 했던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의 얘기들을 종합해 전과자가 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1인시위하는 방법을 <병원 앞 의료사고 1인시위 10가지 원칙>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해 보았다.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