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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노트)

한국백혈병환우회 창립 12주년 기념식 및 후원의 밤"

"서로가 생명의 버팀목이 되어 함께"
한국백혈병환우회 창립 12주년 기념식 및 후원의 밤"

윤명주(한국환자단체연합회 객원기자)

 


작은 선물에 너무 감동마세요. 당신은 나에게 세상을 선물했잖아요."

백혈병을 이겨내고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스무살 청년 유진혁 군의 축하공연 무대. 가수 라디의 '엄마'라는 노래를 부른다. '엄마, 나의 어머니'하는 후렴구에 진혁 군의 진심이 담겨 있는 듯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그의 목소리가 절절해질 즈음 테이블 이곳저곳에서 눈가를 닦는 모습들이 보인다. 바로 진혁 군과 같이 백혈병을 앓고 건강해진 사람과 가족들, 혹은 백혈병으로 소중한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고 남겨진 가족들이다.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백혈병 환우와 가족들, 자원봉사자들과 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한국백혈병환우회 창립 12주년 기념식 현장에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 하고 있었다.

 


2002년 창립해 클린카, 클린시네마, 헌혈톡톡콘서트 등 활동

한국백혈병환우회는 백혈병, 골수형성이상증후군 등과 같이 '피가 아픈' 혈액질환 환자 및 가족들을 돕자는 취지로 지난 2002년 6월 15일 창립되었다.

환우회는 항암치료나 골수이식 후 감염 걱정 없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무균차량 '클린카' 운행, 백혈병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영화관 나들이 '클린시네마' 등의 활동을 한다. 또한 '헌혈하는 사람들과 수혈받은 사람들의 물보다 진한 이야기'라는 주제로 개최하는 토크 형식의 헌혈톡톡(TalkTalk)콘서트, 예비헌혈자를 대상으로 하는 헌혈교육 프로그램 '헌혈에듀케이션', 조혈모세포기증운동, 백혈병환우회의 정기모임 '울타리' 운영 등의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이처럼 환우 및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그들의 어려움과 함께 한지 12년. 그간의 활동을 소개하고 앞으로의 행보를 다지기 위해 한국백혈병환우회는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창립 12주년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 6월 15일 서울여성프라자에서 열린 창립 12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한국백혈병환우회



최현정 MBC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념식은 무균차량 클린카 운영비 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도 겸해 열렸다.

현재 환우회에서 운행하고 있는 클린카는 2대지만 내년 1월부터 2대가 추가 운행된다. 1대당 매월 300~400만 원 정도 되는 운행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후원금을 모금하게 되었다. 이에 클린카에 대한 소개 영상 '함께 지나온 터널'과 환우회 활동을 담은 '희망을 말하다', '세상을 움직이다', '마음을 만나다'가 상영되었다.

이어서 환우회의 안기종 대표는 2001년 11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아내의 이야기를 꺼내며 인사말을 시작했다.

"아내가 글리벡이라는 약을 처음 복용할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내는 성스러운 물건을 만지듯 글리벡 6알을 두 손으로 잡고 '이 약 먹고 꼭 건강하게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 후 약을 먹었습니다. 6개월밖에 살지 못할 거라던 아내가 10개월 후 골수이식을 받았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라며 "저는 백혈병환우회가 여러분들에게 글리벡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백혈병 환자들을 살리고 행복한 인생으로 바꿀 수 있는 행복충전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환우 및 가족들 외에도 대한한의사협회 박완수 수석부회장, 대한약사회 윤영미 정책위원장, 한국병원약사회 이광섭 회장,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김현숙 회장을 비롯한 내외빈 200여 명이 참석했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은 영상으로 대신한 축사에서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을 표현하며 "저 역시 비영리단체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어 그 어려움에 대해 상상하고도 남는다"며 "환우회가 백혈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성장하시길 바란다. 서울시도 백혈병 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돕겠다"고 덧붙였다.

마콜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이윤희 사장은 자신의 위암, 유방암 투병 경험을 공개하며 "서로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런 것들이 투병 후 세상에 복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고 했다.

 


박지윤 MBC 리포터, 김향숙 자원봉사상 수상

기념식에서는 뜻깊은 기부도 소개되었다. 독지가인 백정환 씨와 맑은누리의 남기덕 사장이 총 1억 9천만 원 가량을 기부한 것. 두 사람은 무균차량 클린카 운행비와 영화나들이 클린시네마 운영비로 써달라며 기부금을 전달했다.

▲ 독지가 백정환 씨와 맑은누리 남기덕 사장이 백혈병 환우를 위한 클린카, 클린 시네마 활동에 써달라며 기부금을 전달하고 있다. ⓒ 한국백혈병환우회


다음으로 '김향숙 자원봉사상'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김향숙 자원봉사상'은 지금은 고인이 된 김향숙씨의 봉사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7년 제정되어 올해로 여덟 번째 수상자를 냈다. 올해 주인공은 박지윤 MBC 리포터. 2010년 백혈병환우회 언론방송미디어그룹 '빅아이즈' 3기로 봉사활동을 시작해 약속한 기간 이후에도 재능기부를 계속 해오고 있다. 박지윤 리포터는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고민이 되었지만 막상 상을 받게 되니 기분이 매우 좋다"며 "앞으로도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 고 김향숙 님의 자원봉사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김향자 자원봉사상은 박지윤 MBC 리포터가 수상하였다. ⓒ 한국백혈병환우회


2부는 유진혁 군의 축하공연으로 시작되었다. 진혁 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백혈병 진단을 받고 입원을 한 후 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고 현재 수술한 지는 1년이 지났다고 한다. 건강한 몸으로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유진혁 군은 라디의 '엄마'라는 곡을 열창했다. 유 군은 "병원에 있을 때 옆에 엄마가 항상 계셨는데 엄마한테 꼭 이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었다"며 곡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서 환우회의 홍보대사로 3년째 활동하고 있는 가수 아이비의 축하공연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환우회와 인연을 맺게 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데 그동안 더 열심히 활동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아이비. 자신 또한 백혈병이나 골수 기증에 대해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었다며 그런 인식을 고칠 수 있도록 하는데 앞장설 수 있도록 활동하겠다는 약속으로 무대를 마무리했다.

▲ 3년째 한국백혈병환우회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 아이비가 참석해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환우회 모임은 힘든 투병생활 버틸 수 있는 힘

행사에 참석한 환우회 회원 정현수씨는 "환우회의 '울타리' 모임을 통해 지친 병원 생활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 가족으로서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힘들 뿐만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희망을 갖는 것 자체가 어렵다. 모임을 통해 작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이 오랜 병원 생활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정판배씨는 "어려운 와중에 12년 동안 백혈병 환우와 가족들을 위해 활동하느라 고생한 안기종 대표를 비롯한 사무처 식구들에게 고맙다. 클린카나 클린시네마 같은 활동이 더 활발하게 진행되어 환자와 가족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된다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기념식 3부는 만찬과 퀴즈 풀기, 행운권 추첨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나열된 자음만 보고 단어 및 문장을 유추해 맞추는 퀴즈 시간. 자신 있게 손을 들고 정답을 말하러 무대에 오른 어린이가 정답을 말하는 순간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기념식 관련 책자에 적힌 문구가 정답이었는데 예쁘게 꾸며진 글자가 어린이 눈에는 오히려 읽기 힘든 글자였는지 잘못 읽게 된 것.

그 답은 "서로가 생명의 버팀목이 되어 함께"라는 문구였다. 기념식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사연과 아픔은 각자 달랐지만 어려움과 슬픔 또한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일과 같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평생 얼마나 있을는지. 한국백혈병환우회의 향후 활동에 기대를 걸어 본다.

▲ 유진혁 회원의 축하공연 백혈병을 이겨내고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유진혁 군이 기념식에 참석한 어머니를 위해 가수 라디의 '엄마'라는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 한국백혈병환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