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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노트)

화장실, 내망현 그리고 건강관리 기획서

화장실, 내망현 그리고 건강관리 기획서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가 작년 5월쯤 <내망현>이라는 책을 썼다며 짧은 추천 글을 써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메일로 수백 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받자마자 단숨에 읽어 나갔다.

 

그리고 김철중 기자에게는 <마치 학창시절 ‘삼국지’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꺼번에 다 읽지는 마시라. 하루에 한 개씩만 읽고 여러 번 곱씹어 볼 것을 추천한다. 그래야 이 책의 진국을 맛볼 수 있다.>라고 추천 글을 써서 보냈다.

 

 

6월쯤 책이 출간된 후 김철중 기자가 고맙게도 <안기종 대표님, 세상에 처음 내 놓는 책을 떨리는 마음으로 드립니다. 2013.6.17 저자 김철중 드림>라는 친필 서명까지 한 책을 등기로 보내 주었다. 받은 책은 서재에 꽂아 두고 지난 11개월 동안 잊고 지냈다. 당연히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보지도 못했다.

 

나는 화장실에 갈 때면 스마트폰을 가져가 기사 검색해 보는 것이 습관이다. 오늘 아침에도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화장실에 가지고 가려고 했지만 밧데리가 없어서 급한 김에 서재에 꽂힌 <내망현>을 빼냈다. 화장실에 앉아서 첫 번째 글인 <중년의 질병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라는 쉼표>를 읽고 난 뒤 나는 머리를 큰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질병의 징조를 느끼는 순간 한 템포 쉬어가야 한다. 그렇게 다가온 질병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라는 쉼표로 받아들이자. 멈춰야 비로소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6페이지 분량의 글에 등장한 사람과 내용 모두가 나에게 하는 얘기였고 경고였기 때문이다.

 

나는 2008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후부터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호르몬제를 먹는다. 2010년에는 고지혈증 진단을 받고 매일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름진 음식을 좋아한다. 거기다 일주일에 1~2일은 까먹고 약을 안 먹는다. 2001년 고시공부 할 때 폐결핵에 걸려 9개월간 약을 먹고 완치 되었다. 6개월마다 X-ray로 추적관찰을 해야 하는데 폐 사진을 찍은 지 4년이 넘었다. 2년 전 공단에서 나온 건강검진은 받지도 않았고 개인적으로 일반 의원에서 정기적으로 받던 종합검진도 안 받은 지 4년이 지났다.

 

올 초에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갔더니 충치 몇 개 치료 견적이 100만원 나왔다. 물론 아직까지 치료받지 않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눈이 침침해 안과에 가서 시력 측정을 다시 해 안경을 새로 맞추고 싶지만 한 번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겨울뿐만 아니라 봄여름가을에도 코가 킁킁거려서 비뇨기과에 가서 제대로 한번 치료를 받고 싶지만 이 또한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왼쪽 엄지발톱이 곰팜이균에 감염되어 무좀이 생겼지만 6개월 동안 이틀마다 소독하고 사포로 긁어내고 약을 코팅하는 치료과정이 귀찮아 치료 진척이 거의 없다. 겨울 한파나 샤워 후 가끔 뒷골이 당기고 어떨 때는 가슴을 꾹 찌르는 듯 한 통증이 20~30초 지속하다가 괜찮아지는데 혹시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은 아닌지 걱정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작년부터는 허리와 엉덩이 통증으로 뛰지 못하고 있고 최근에는 심해져서 걷기도 힘들지만 병원에 가서 CT나 MRI를 찍을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모두 바쁘고 중요한 일이 많아서이다.

 

김철중 기자의 <중년의 질병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라는 쉼표>라는 경고 메시지를 읽자마자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있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안기종 건강관리 기획서>를 작성했다.

 

종합검진, 디스크, 치과, 안과 검사 및 진료 일정을 잡고 고지혈증, 만성비염, 무좀 치료 계획도 좀 더 구체적으로 세웠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는가. 중년에 접어난 나의 몸뚱아리를 청년으로 되돌릴 수 없는 한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바로 건강을 챙기는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부터 나는 김철중 기자가 “내시경으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망원경으로 멀리 내다보고 현미경으로 삶을 살펴본다.”는 의미로 붙인 <내망현>을 하루에 하나씩 읽고 실천할 내용을 찾는 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어쩌다보니 김철중 기자의 책을 홍보하는 글이 되었지만 상관없다. 오늘 아침 화장실의 무료함을 피하기 위해 서재에서 무심코 꺼내 읽은 <내망현>이 출근도 미룬 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나로 하여금 건강관리 계획을 세우도록 한 김철중 기자에게 고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