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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기사)

멱살·욕설은 기본…환자가 두려운 의사들

[기획]멱살·욕설은 기본…환자가 두려운 의사들
"진료실 내 의료인 폭행, 더 이상 방치 안돼" 의료계 한 목소리
환자·시민단체, 여전히 ‘미온적’…의료법 개정 미지수

 

청년의사 2013.02.18 이승우 기자 

 

지난 7일 대구의 김모 정신과의원 원장이 자신이 20년 넘게 진료해오던 환자에게 23cm 길이의 등산용 칼로 피습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의료계의 ‘의료인 폭행 방지법’ 개정 요구가 봇물 터지듯 일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등 의료인 단체들은 물론 일부 국회의원들도 정부에 의료인 폭행 방지책 마련을 촉구함과 동시에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진료실 내 의료인 폭행에 대해 가중처벌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국회 통과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피습당한 김 원장“다시 환자 보기 두렵다”

 

대구의 김 모 원장은 지난 7일 자신의 환자에게 찔려 복부에 5cm와 3cm의 자상을 입고 장간막이 드러난 상태로 경북대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응급수술 등 치료를 받은 김 원장은 천만다행으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이번 사태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지난 13일 의협 노환규 회장과 경북대병원 입원실을 찾은 기자들에게 김 원장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진료를 다시 하긴 해야 하는데, 과연 예전처럼 진료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솔직히 다시 환자 보기가 두렵다. 특히 나를 찌른 환자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후 같은 상황이 또 발생할까봐 두렵다”고 괴로워했다.

 

그러면서도 “가해환자를 돌봐오던 환자의 어머니가 치매로 환자를 돌볼 수 없게 돼 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정상이 아니었다'며 "안타까운 마음과 측은지심이 든다”고 오히려 환자를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진료에 복귀하게 되면 가스총, 전기충격기 등이라도 비치해 두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면서 "보호장비를 갖춘다고 해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런 생각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의료인 폭행 가중처벌법’시도 번번이 실패

 

사실 환자나 보호자의 의료인 폭행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응급실에서는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응급처치를 빨리 해주지 않는다며 의료진의 멱살을 잡고 항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이에 의료계는 오래 전부터 진료실에서의 의료인 폭행을 보다 근원적으로 근절하기 위해 형법에 의한 처벌규정과 별도로 의료법을 개정해 가중처벌하는 법적근거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환자단체와 시민단체들이 “환자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강력히 반대, 의료계와 정치권의 의료법 개정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 18대 국회에서도 의료인에 대한 폭행·협박 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당시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건강세상네트워크, 경실련, 참여연대 등은 법안 개정을 반대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의료계를 강력히 비난했다.

 

이들 단체들은 "환자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의사 권위주의를 더욱 고착화시키며 기존의 관련 법령에 의해 이미 가중처벌 되고 있는 의료인 폭행, 협박을 중복해서 가중처벌 하도록 규정한 의료법 개정안을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해당 개정안이 의료인에 대한 폭행·협박을 예방하는 효과는 거의 없고 오히려 의료인을 폭행·협박한 환자나 환자가족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려는 응보(應報)적 효과뿐이며, 대통령이나 경찰 등 직무집행중인 공무원을 폭행·협박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에 비해 형평성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18대에 이어 19대 국회에서도 의료인 폭행 시 처벌을 가중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지난해 12월 17일 민주통합당 이학영 의원(경기 군포)이 ‘의료인 폭행 시 5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것.

 

 

의료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의료법 개정에 총력"

 

이에 의료계는 이번 만큼은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법개정을 기필코 이루겠다고 벼르고 있다.

 

더 이상 의사들이 언제 피습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진료하도록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의협의 의지는 강하다.

 

노환규 회장은 대구 김 모 원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근본적 해결책 마련을 다짐하고, 의료인 폭행 시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노 회장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이 오히려 환자로부터 피습당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은 의료인의 안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안전망이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진료실 내에서 발생하는 의료인 폭행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 및 진료실 내 CCTV 설치 허용을 추진, 진료실 폭행으로부터 의료인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 마련에 본격 착수할 방침”이라며 “의협이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경기도의사회, 대구시의사회,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등도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경기도의사회, 치과의사회, 한의사회, 간호사회 등 경기지역 의료단체들은 이학영 의원실과 간담회를 개최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등 이번에야말로 의료법 개정을 실현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여전히 미온적인 환자·시민단체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의료법 개정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의료계와는 달리 환자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미온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때문에 현재 국회에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돼 시행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경실련 한 관계자는 “문제의 의료법 개정안이 환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면서 “의료인들이 환자나 보호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사실상 가중처벌을 하고 있는 의료인 폭행에 대해 추가로 가중처벌 근거를 마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의료인 폭행이 다른 환자들의 안전에 위해가 되고 의료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의료계의 지적은 타당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률적 형평에 어긋나는 법을 만드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면서 “의료계는 의료인 폭행에 대한 가중처벌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의료인들이 환자들을 보다 세심하게 배려하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