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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기사)

의료분쟁조정법 시행 1년…여전히 뜨거운 감자

의료분쟁조정법 시행 1년…여전히 뜨거운 감자
의료기관 참여율 저조하자 '강제화' 놓고 의료계·시민단체 공방

 

청년의사 2013.04.26 김진구 기자 


 

“(의료분쟁조정제도 내) 의료기관의 저조한 참여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참여를 의무화해야 한다.”(정부, 시민단체)

“참여율을 끌어올리는 방안은 강제참여가 아닌 의료계의 불신 해소다.”(의료계)

 

지난 25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대한의료법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의료분쟁조정법 시행 1주년 성과와 과제 세미나’에서는 의료기관의 저조한 조정참여율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 시민단체 등이 날선 공방을 펼쳤다.

 

쟁점은 최근 보건복지부 진영 장관의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기관의 조정 참여 의무화와 감정위원회의 구성 방안 등이었다.

 

 

“참여 의무화는 전근대적·비민주적 발상”

 

먼저 중재원은 의료기관의 조정절차 참여 의무화를 통해 현재 40%(조정신청 804건 중 참여는 299건)에도 못 미치는 조정 참여율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피신청인이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조정절차에 응하고자 하는 의사를 중재원에 통지함으로써 조정절차가 개시되는데, 이 기간 내에 의사를 전달하지 않으면 조정신청은 각하된다.

 

그러나 이 절차가 당초 입법 목적에 위배되고 신청인(주로 환자 측)의 제도 이용 기회를 봉쇄하고 있다는 게 중재원 황승연 상임조정위원의 지적이다.

 

황 위원은 “피신청인이 조정절차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는 경우에는 조정신청서를 송달받고도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며 “조정절차의 개시 결정권을 일방적으로 피신청인에게 부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 조정신청의 대부분은 환자 측에서 제기한 것”이라며 “의료인 측의 참여 거부로 조정절차가 아예 개시되지도 않은 채 각하되는 것은 의료분쟁을 가급적 조정제도에 의해 해결하기를 원했던 입법 목적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또 “의료기관 측에 사실상 결정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환자 측의 제도 이용 기회를 봉쇄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환자 측의 피해가 확대되거나 조정신청을 사전에 포기할 가능성도 생긴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의료기관의 참여를 의무화하는 건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인 발상”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저조한 참여율의 원인인 ‘의료계의 불신과 거부감’을 해결하지 않고 강제화를 통해 참여율을 끌어올릴 경우 의료계의 부정적 인식을 더욱 심화시킬 거라고 우려했다.

 

대한의사협회 이동욱 의료분쟁조정법특별위원회 전문위원은 “의사들이 거부감을 보이는 부분에 대해 거부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참여율을 높인다는 게 얼마나 효율성이 있겠느냐”며 “강제화는 또다른 위헌논란과 분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전문가의 감정 과정 참여, 강제적 현지조사 및 형사처벌 규정, 의료사고 대불금제도,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한 비용 분담 등 문제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세승의 현두륜 변호사 역시 이같은 반박에 동의하며 의료기관이 14일 내 참가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조정절차가 자동 개시되도록 하는 중재안을 내놓기도 했다.

 

현 변호사는 “공정성과 신뢰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무화할 경우 의료계의 큰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며 “강제적인 절차 진행은 조정성립률을 떨어뜨리고 결국 사회적 비용만 증가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대신 “현행법 내에서 피신청인이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동의 의사를 통지하지 않으면 조정신청이 각하되도록 하는 대신 의사표시가 없을 경우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비의료인이 의료사고를 감정한다고?”

 

이동욱 위원은 의료계가 현행 분쟁제도에 불신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로 감정 과정에 비전문가가 참여하는 규정을 들었다.

 

현 분쟁법에서는 모든 사건이 감정부회의와 조정부회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으며, 감정부와 조정부는 각 5인의 감정위원 및 조정위원으로 구성토록 하고 있다.

 

감정위원 5인은 의료인 2명, 법조인 2명, 소비자권익위원 1인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법조인 2명 중 1명은 검사가 맡도록 했다.

 

그러나 ‘편향적 감정을 견제하기 위해’ 포함시킨 법조인 2명과 시민단체 1명의 경우 의료분쟁을 감정에 있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게 이 위원의 주장이다.

 

이 위원은 “법안이 신속성과 공정성만 강조하다보니 가장 중요한 걸 놓쳤다”며 “감정의 핵심은 객관적 사실의 규명인데 의사인 우리가 봐도 헷갈리는 걸 비의료인이 그것도 법적으로 명시된 60일 이내에 객관적 사실을 규명해낼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제 식구 감싸기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의 역할은 감시자의 역할로 끝나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은 5명 중 3명이나 되는 비의료인이 의료인과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판사가 죄를 지었을 때 같은 판사로서 봐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판사에게 판결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같은 논리”라며 “의학적 감정이 아닌 사회적 고려는 감정절차가 아닌 조정절차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공정성을 이유로 이동욱 위원의 주장을 반대했다.

 

한국환연 안기종 대표는 “조정위원 5명 중 검사를 포함시키냐 마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는데 환자 입장에서는 검사가 있는 것만으로 굉장히 마음이 놓인다”며 “비의료인 3명이 참여함으로써 고도의 공정성이 확보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실제 전문적인 감정과정은 대부분 의료인 2명에 의해 이뤄진다. 나머지 비의료인 3명은 이에 대한 검증과 감시 역할을 통해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政 “참여 의무화 대신 감정위원 조정은 가능”

이에 대해 정부는 의료기관의 조정참여를 의무화하고, 감정위원은 일부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복지부 곽순헌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조정참여율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고서는 제도가 실효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며 “참여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 과장은 “14일 내 참가 의사표시 없으면 자동 개시되는 절충안도 나왔다”며 “참여 의무화와 절충안 모두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의료계의 설득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의료계의 거부 이유를 잘 헤아리지 않고 법을 개정하면 마치 일방적으로 제도 이용을 강제하는 것처럼 인식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조정참여 거부의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는 감정위원 구성 문제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 현 구성을 유지하는 대신 법조인 2명을 1명으로 줄이고 대학교수 1명을 추가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곽 과장은 “분쟁법 시행 전 감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전문성이 떨어져서 생겼던 건 아니다”며 “의사가 같은 의사를 대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의료인 숫자를 그대로 가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