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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기사)

스티브존슨 증후군, 보상의 길 열리나?

 
"감기약을 복용했을 뿐인데 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직도 막막합니다."

자신의 상황을 떨리는 목소리로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주장근씨. 6년 전, 만 31세에 창업을 준비하던 중 감기에 걸려 약국에서 약을 사서 먹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니 오히려 몸에 열꽃이 피고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대형 병원으로 갔지만, 오히려 온몸에 수포가 올라오고 살갗이 찢어지는 등 고통은 더해갔다. 병명은 스티브존슨 증후군. 의약품 부작용으로 피부나 내장이 괴사하는 무서운 희귀병이다. 퇴원 이후 보상받을 방법을 찾아봤지만 모든 것이 다 허사였다.

현재 주장근씨와 같은 의약품 부작용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작년 말 의약품부작용신고센터에 접수된 수만 해도 9만 건이 넘을 정도이다. 문제는 구체적인 피해보상을 받을 방법이 이제까지 없었다는 점이다. 다행히 앞으로는 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주장근 씨는 공청회 시작 전 자신의 현재 어려운 상황을 발표했다.
ⓒ 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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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최동익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의 주최로 '약화사고 피해구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공청회는 그 첫걸음이다. 의약품 부작용 피해자 구제를 위해서 유명무실했던 1991년 약사법을 개정 발의하기 전 의견수렴을 위한 자리였다. 최동익 의원의 개정 법안은 이달 입법될 예정이다.

이날 공청회는 "본인도 스테로이드로 인해 눈이 녹아 시력을 잃어서 약화 사고에 관심이 많았다"며 "오늘 이 시간이 지금까지 사업이 시행되지 않고 있어 여전히 보상의 사각지대에 놓인 약화사고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토론의 시간이 됐으면 한다"는 최 의원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열띤 토론의 문을 열었다.

 


보상금 재원은 의약품 제조·수입업체와 정부가 나눌 방침

최동익 의원은 “오늘 이 시간이 지금까지 사업이 시행되지 않고 있어 여전히 보상의 사각지대에 놓인 약화사고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토론의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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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부작용과 관련하여 많은 의견이 다양한 측면에서 제시됐다. 그중 중요한 논점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 논점은 '재원' 마련에 대한 것이었다. 현재 보상금 재원은 의약품 제조·수입업체와 정부가 나눠내도록 할 방침을 세웠다. 다만 전체 보상금 재원 가운데 제약업체와 정부가 각각 얼마만큼의 분담률을 질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방안은 일단 의약품 제조·수입업체로부터 전년도 의약품 매출액의 최고 100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본부담금'으로 받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유해판정 의약품에 페널티 부과는 제외했다. 위험부담이 큰 R&D 투자를 꺼려 할 수 있다는 판단이 한몫했다.

차태선 한국제약협회 의약품정책팀 부장은 "해당 제도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지속적인 약값 인하 정책으로 현재 제약업계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의약품 부작용 보상 부담금은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입장을 표명했다. 뿐만 아니라 "의약품 분류에 따라 부작용 발생과 위험도가 다른 만큼 획일적으로 매출액에 따라 부담금을 책정하는 것은 업계에 부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일반에 대한 차등과 전문의약품 중에서도 신약과 기존의약품과의 차등을 두는 등 품목별 특징을 반영해야 한다"고 부담금 책정방식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권오훈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전무는 "무 과실이여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요율 산정 등에 필요한 통계 자료마저도 합의되어야만 한다"며 "보상 재원은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조세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의약품 피해구제가 형평성 맞아야 하고 이해 당사자간의 합의도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약품안전정책과장은 "우리나라 약사법에서는 의약품 부작용 피해 구제를 의약품 제조업자·수입자가 하게 됐다. 즉 민간단체가 피해구제사업의 주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국가가 피해구제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경우 법 규정과 취지에도 많지 않다. 만약 정부가 맡게 되면 피해구제 사업비를 국가재정법 상의 기금으로 관리·운영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정부에 의한 재원 조달 방법에 반대했다.

 



'정부 주도이냐, 민간 주도이냐', 사업주체에 대한 의견 엇갈려

두 번째 논점은 의약품 부작용 보상 사업주체를 '정부 주도로 할 것이냐, 민간 주도로 할 것이냐'에 대한 것이었다. 정부가 주도하게 되면 공정성이 발휘되는 반면 처리 절차와 재정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반면 민간 주도이게 되면 재정을 운영하는 단체가 힘이 생기게 되다 보면 공정성에 문제가 생기지만 처리가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지난 3일, 민주통합당 최동익 의원 주최로 ‘약화사고 피해구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 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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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주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장은 "의약품 부작용 보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의 접근성, 보상의 공정성, 보상 절차와 조직의 효율성'이다. 일본은 행정적 비용만 정부에서 조달하고 나머지는 민간에서 충당하는 별도 법인이 운영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을 벤치마킹하되 우리 실정에 맞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보다는 식약처 산하 법인인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이 의약품 부작용 보상을 담당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본다"고 의견을 밝혔다.

김중권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약품안전관리원이 실행주체가 되어 창구 역할을 하지만 의약품 안전에 관한 종국적인 책임을 국가가 져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주체는 식약처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정부주도의 의약품 부작용 제도 운영을 제안했다. 아울러 "피해구제 여부를 판정하는 위원회의 경우 업무수행에서 전문성과 독립성이 견지될 수 있도록 위원의 신분보장 등도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단체연합회의 안기종 상임대표는 "환자 입장에서는 보상 절차가 빠른 민간이었으면 좋겠다. 정부는 그 절차가 길고 방법이 복잡한 경우가 많아 몸과 마음이 이미 피폐해진 피해자들을 더욱 힘들게 할 수 있어서이다"라며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 "빨리 법이 발의되어 어쨌든 올해 안에 시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보상이 있다는 것만으로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상규모와 범위가 처음부터 흡족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점차 넓혀 가면 된다고 본다"고 덧붙여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