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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기사)

60대 간암환자, 입원수속 하다 고함친 까닭

60대 간암환자, 입원수속 하다 고함친 까닭

[중앙일보] 2013.03.18 00:21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배지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의료비 개혁, 이것부터 (상) 환자가 봉 선택진료제

마취·촬영까지 특진 강요하는 병원들
수술 제대로 안 된다는 말에 환자들 어쩔 수 없이 다 선택
“선택진료 없애면 경영 타격” 병원들은 수가 인상 주장

 

 

“수술 의사를 특진 교수로 선택하면 마취·방사선촬영 도 교수급(특진의사)으로 해야 합니다.”(병원 직원)

“왜 내가 이걸 체크해야 해요?”(간암 환자)

지난 13일 오후 5시 서울 강남의 한 대학병원 1층 입원 수속 창구가 소란스러워졌다. 간암 환자(60·서울 강동구)가 입원약정서를 쓰면서 고함을 쳤다. 병원 직원이 약정서 뒷면 선택진료 신청서의 모든 항목을 체크할 것을 요구하자 항의한 것이다. 환자는 검사나 마취 같은 데까지 특진을 해야 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직원이 “(모든 항목을) 선택하지 않으면 나중에 복잡해지고 수술이 제대로 안 될 것”이라고 하자 환자는 할 수 없이 모두 체크했다.

그나마 이 환자는 선택진료가 뭔지 알고 있어서 항의라도 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사정도 모른 채 병원 창구에서 “이것저것 다 체크하세요”라고 하면 그리 하는 실정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입구에서 피켓을 들고 선택진료에 반대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강북의 한 대학병원 창구에서 만난 환자 보호자 박상국(55)씨는 “형님이 암 수술을 받기 전 비용을 물어보니 병원 측이 ‘수술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환자가 잘 모르고 선택진료(특진)를 선택한 것이다.

선택진료는 원래 환자가 실력 있는 의사를 고르되 비용을 더 지불하는 제도다. 그런데 사실상 의료비를 올리는 제도로 전락했다. 본지가 서울 주요 대학병원 암·심장병 환자 7명의 수술비 영수증을 분석한 결과, 선택진료비가 적게는 환자가 낸 진료비의 24.7%에서 많게는 절반이 넘었다. 지난달 3일 심장병 수술을 받고 15일 입원한 윤모(65)씨는 393만1000원의 선택진료비를 냈다. 윤씨 부담의 55.4%에 달했다.

1월 말 현재 전국 322개 병원이 8219명을 선택진료 의사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43개 상급종합병원(대형 대학병원) 소속 의사가 4683명으로 전체의 57%를 차지한다. 선택진료 문제는 대형 병원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전공의(레지던트)가 진료하고도 선택진료비를 받는다는 점이다. 주부 박모(69·경기도 고양시)씨는 유명 대학병원에서 자궁근종 수술을 결정할 때 레지던트가 진찰을 다 하고 교수는 고작 30초 정도 봤다고 한다. 박씨는 “교수 얼굴을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선택진료비를 다 받았다. 교수가 실제 수술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얼마 전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은 한 부모는 최근 환자단체 주최 행사에서 ‘가짜 선택진료’ 사실을 고발했다. 부모는 “수술할 때 마취과 교수 선택진료비를 지불했는데 레지던트 1년차가 마취했고 애한테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선택진료가 문제가 되자 최근 민주통합당 김용익 의원은 선택진료비를 못 받게 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선택진료비는 병원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2011년 서울대병원의 선택진료비 수입은 591억원으로 전체 진료 수입의 9.1%를 차지했다. 부산대 7.7%, 경북대 7.2%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택진료를 없애면 당장 병원 운영에 타격이 온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장은 “선택진료비는 낮은 진료수가 보전 취지도 있기 때문에 이를 없애려면 수가를 10~15%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 간부는 “선택진료를 없애면 대형 병원 문턱이 낮아져 환자 쏠림이 더 심화될 것”이라며 “일종의 필요악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선택진료를 아예 없애지 말고 선택진료의사의 법정 허용 상한선(80%)을 대폭 낮춰 환자의 진정한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없애면 의료의 질이 하향 평준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