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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중증 환자 간병하는 가족, 이렇게 삽니다

중증 환자 간병하는 가족, 이렇게 삽니다

[대선후보의 의료공약 ②] 간병의 족쇄, 풀어줘야 한다.

 

 

오마이뉴스 2012.12.7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우리나라 병실은 야전군 숙소를 연상케 한다. 6인실 병실에는 6개의 환자용 침대뿐만 아니라 침대 아래 환자보호자용 간이침대 6개도 함께 있다. 간이침대는 길이가 짧아서 환자보호자가 누우면 다리가 침대 밖으로 나가 숙면을 취할 수 없다. 6명의 환자뿐만 아니라 6명의 보호자도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숙식을 하며 간병으로 골병이 든다.

 

 

    ▲ 간병인들이 자는 보조 침대. 침대가 좁아 근육통 등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출처: 오마이뉴스 구영식)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간병문제는 미룰 수 없는 보건의료의 핵심 어젠다가 됐다. 200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만 65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11%를 넘어섰다. 노인인구의 증가에 비례해 의료비 또한 증가해 2009년 기준으로 건강보험 재정에서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된 의료비만 12조 391억 원이나 된다. 이는 전체 의료비의 30.5%를 차지한다.

 

또한 미혼이나 독신, 가족 해체 등으로 '나홀로가구'가 2012년 기준으로 450만 명에 이른다. 이렇듯 간병은 현재 병실에서 투병하고 있는 일부 환자들의 가족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됐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간병비

 

간병의 가장 큰 문제는 환자의 고액 치료비뿐 아니라 간병비의 이중 부담이다. 대표적인 고액질환인 백혈병을 예로 들어보자. 백혈병 환자들은 평균 3~4차례의 항암치료를 받고 골수이식을 받기 위해 약 6개월 동안 입원하게 된다.

 

만일 이 기간 동안 간병인을 사용하게 되면 간병비만 1080만 원~126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하루 간병비 6~7만 원 기준). 이는 백혈병 환자의 골수이식 비용과 맞먹는 금액이다. 결국, 이러한 고액의 간병비를 부담할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 가정은 가족 중 누군가 직장을 휴직하거나 퇴사하고 간병을 해야 한다.

 

특히 중질환으로 장기입원을 하는 환자가족들에게 간병은 '돈 먹는 하마'와 같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한강성심병원 입원실에 누워있는 손영준(24) 환자의 한 달 간병비는 200만 원 이다. 여기에 일주일에 하루는 간병인이 집에 가기 때문에 다른 간병인을 임시로 고용하거나 가족들이 대신 간병을 해야 한다. 간병인에게 밥값은 별도다. 밥값까지 합한다면 한 달 간병비로 약 240만 원이 들어간다. 단순한 수치로 보더라도 손영준씨 가족이 지난 6년 동안 부담했던 간병비는 1억 원이 넘는다.

 

 

환자 간병하다가 환자가 되는 가족들

 

한달에 180만 원 이상(30일 X 6만 원)의 간병비를 부담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가정은 가족 중 누군가가 간병을 해야 한다. 이들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년을 병실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 생활해야 한다. 이들의 경우, 식사도 환자가 남긴 반찬이나 집에서 준비해온 마른 반찬에 전자레인지에 데운 햇반이 전부다. 당연히 영양공급이 충분하지 않고 운동도 부족해 질병에 걸리고 많다.

 

2012년 <보호자없는병원실현을위한연석회의>에서 가족간병 경험이 있는 2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간병으로 관절질환(허리통증, 무릎통증, 어깨통증 등)을 경험한 사람이 29.6%였고 우울증(무기력, 신경질, 불면증 등)을 경험한 사람이 11.7%였다. 이밖에도 호흡기감염 및 감기몸살, 스트레스, 심장질환, 만성피로, 위장질환 등 다양한 질환을 경험했다. 아무런 질환도 경험하지 않았다고 답변한 사람은 18.8%에 불과했다.

 

 

                                          ▲ 2012년 보호자없는병원실현을위한연석회의

출처- 2012년 보호자없는병원실현을위한연석회의
ⓒ 안기종

 

 

간병으로 방치되는 자녀들

 

우리나라 간병은 대부분 배우자, 엄마, 딸과 같이 여성의 몫이다. 딸이 부모를, 아내가 남편의 간병을 시작하면 자녀들은 말 그대로 방치된다.

 

 

 

간병(자료사진)
ⓒ 김혜원

특히 아빠가 암과 같은 중증질환으로 입원하고 엄마가 아빠를 간병하면 자녀들은 혼자서 또는 형제들끼리 밥을 해먹으며 학교에 다닌다. 친정이나 시댁에서 간병기간 동안 자녀들을 맡아서 양육하기도 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면 자녀들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정서적 장애를 겪게 된다. 환자를 살리기 위한 간병이 자녀의 탈선, 장애라고 하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장옥희씨는 중학교 1학년인 첫째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들을 혼자서 키우고 있다. 혈액암 투병중인 첫째는 지난 10월 26일 입원해 조혈모세포이식술을 받았다. 장옥희씨도 아들 간병을 위해 34일 동안 함께 무균병실에서 생활했다. 그동안 열세살 둘째는 혼자서 밥 해먹고 집에서 혼자 자고 학교를 다녔다. 장옥희씨는 늘 밝고 쾌활한 둘째가 엄마와 떨어져 혼자서 지낸 34일이 많이 힘들었는지 형이 퇴원했는데도 시무룩하다고 걱정이다. 첫째 살리려다 둘째를 잃겠다 싶어서 휴직중인 직장을 그만두고 첫째 간병과 둘째 양육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한다.

 

 

간병서비스 제도화와 급여화가 필수적 선제조건

 

현재 간병 서비스는 제도화 돼 있지 않다. 때문에 간병인은 의사나 간호사와는 달리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또, 간병은 환자와 간병인간 사적계약에 의해 이뤄진다. VIP병동이나 일반병동의 간병인 급여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계약은 유동적이다. 보통 6~7만 원이 관행이지만 10만 원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환자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선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에 간병 서비스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고액의 간병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건강보험에 간병의 급여화 근거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민주통합당 이용섭 의원이 지난 7월 3일 가장 먼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과 의료급여법 개정안'을 동시에 대표 발의했다. 다음으로 매년 3천억 원~5천억 원이 소요되는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올해부터 경남, 인천, 충남, 충북, 서울 등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자체 예산을 편성해 '보호자없는병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보편적 간병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다양한 모델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특히, 서울시는 간병인 충원 개념이 아니라 간호보조 인력뿐만 아니라 간호 인력까지 포괄해 대폭 증원하는 방식으로 보호자 없이도 환자가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안심병원> 모델을 추진 중에 있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환자안심병원> 모델은 그동안 환자들이 요구해온 '보호자없는병원' 모델과 가장 유사한 형태이다. 하지만 서울시의회가 아직 예산 승인을 하지 않고 있어서 추진여부가 미지수다.

 

 

서로 다른 간병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박근혜-문재인 대선후보

 

이번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해소"가 의료정책의 핵심공약으로 부상했다.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 등 대선후보 모두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의 급여화에 대해 찬성하고 있다. 다만 추진시기에 있어서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간병문제 해결에 문재인 후보가 가장 적극적이다.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와 같이 점진적으로 급여화하겠다는 모호한 말이 아니라 2015년까지 기간을 못 박고 간병서비스를 급여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더 나아가 지난 11월 12일에는 문재인 후보가 직접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 상임위 간사, 예결특위 위원들을 모두 소집해 본인이 당선되면 즉시 보건의료분야 '보호자없는병원' 지원 공약을 이행할 수 있도록 24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하도록 주문까지 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도 간병서비스 급여화에 있어서는 문재인 후보 못지않게 적극적이지만 구체적인 추진계획은 아직 밝히고 있지 않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열녀(烈女)나 효녀(孝女)의 대부분은 병에 걸린 남편이나 노부모를 잘 간병한 자식들 중에서 나왔다. 이는 간병이 그만큼 힘들다는 반증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건강보험 보장성이 많이 후퇴하고 있다. 당연히 치료비 부담도 늘어난다.

 

여기에 매달 180만 원 이상의 간병비까지 지불해야 한다면 국민은 의료비 때문에 허리가 휘어질 것이다. 간병으로 인한 자녀들의 방치와 정서적 불안은 가정 해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이젠 대선후보가 나설 때다. 대통령선거에서 간병이 사회적 의제가 된 경우는 이번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처음이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환자가족을 간병의 족쇄로부터 풀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