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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의료분쟁소송법 국회 통과, 환자들은 반갑다.

의료분쟁소송법 국회 통과, 환자들은 반갑다

의료분쟁조정법 국회 통과...1년 유예기간 걸쳐 3월부터 시행

 

23년간의 진통 끝에 의료분쟁조정법 국회 통과

오늘 11일 지난 23년간 국회에서 표류해 온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의료분쟁조정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3월부터 시행된다.

현재 의료분쟁 조정을 위해 의료법상의 의료심사조정위원회와 소비자기본법상의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전문성 부족으로 그동안 환자들로부터 외면당하거나 소액사건 위주로만 처리해 사실상 의료분쟁 조정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결국, 환자들은 소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심에만 평균 500만 원 이상의 변호사 비용과 20% 상당의 성공보수금을 지불해야 한다. 소송기간도 평균 26개월이 걸린다. 의료행위의 전문성과 의료정보의 독점성으로 인해 환자가 의료인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극히 힘들어 승소율도 저조하다.

▲ " 의료인 과실 입증의 어려움과 장기간의 소송기간, 고액의 소송비용은 의료사고 피해자의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가중시켜 왔다"
ⓒ 안기종



의료사고가 의심되어도 환자는 경제력과 인내심 그리고 의학적 전문성까지 갖추지 않으면 백전백패하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소송의 현실이었다.

중재원이 입증책임 전환규정 대신할 수 있을까?

이런 와중에 의료분쟁조정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환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의료소송에 있어서 입증책임을 누가 지느냐가 소송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을 고려할 때 입증책임 전환규정이 빠진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환자들은 의학적 전문가이고 의료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의료인이 의료사고가 자신의 과실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도록 하는 입증책임 전환규정을 강하게 요구했으나 의료분쟁조정법은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 " 의료소송에 있어서 입증책임을 누가 부담하느냐가 소송의 승패를 좌우한다. 환자들은 의학적 전문가이고 의료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의료인이 의료사고가 자신의 과실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도록 하는 입증책임 전환규정을 강하게 요구했으나 의료분쟁조정법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 안기종

 


다만, 의료분쟁조정법에서는 입증책임 전환규정 대신 의료분쟁의 공정한 해결을 위해 독립기구인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중재원)'을 설립하고 그 산하에 의료사고에 대해 조사하고 조정·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의료사고 감정단'과 '의료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했다. 또한 신속한 피해구제가 가능하도록 조정 신청부터 판정까지 걸리는 기간을 최장 120일 이내로 했다.

무엇보다 의료분쟁조정법의 성공 열쇠는 '의료사고 감정단'의 객관적 구성일 것이다. '의료사고 감정단'의 구성은 의료인 2명, 법조인 2명, 비영리민간단체 1명으로 하되 법조인 2명 중에서 한명은 반드시 검사를 두도록 해 기존 감정 업무를 수행했던 의사협회, 각종 학회 보다는 좀 더 중립적인 의료사고 감정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처럼 의료사고에 대한 의학적 감정을 담당할 의료인이 피해 환자보다는 가해 의사에게 유리한 감정을 할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의료사고 감정단' 내에서의 법조인 및 비영리민간단체의 의료인 감시기능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임의적 조정전치주의를 채택해 의료사고 피해자가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또는 조정절차 중에도 언제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피해자의 손해배상금의 신속하고 확실한 지급을 담보하기 위해 중재원에서 대신 지불해 주고 의료기관에 구상하는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도 도입했다.

산부인과 '분만'에 한해서 의료인이 불가항력적으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국가가 일정액을 무과실 보상해 주는 것에 대해서는 자칫 의료사고의 실체진실 발견에 소홀할 수 있어 유예기간 2년 동안 면밀한 검토를 해야 한다.

환자입장에서 형사처벌특례조항의 득과실

의료분쟁조정법에서 최대 논쟁거리였던 조정이 성립되거나 화해가 되었을 때 업무상과실치상죄에 한해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규정에 대해서는 의사특권법이고 사인간의 합의로 형벌소추권을 제한하는 위헌규정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사망과 중상해가 제외됐고, 실제 의료인이 의료사고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피해자는 언제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의료인의 조정절차 참여를 유도하는 차원에서 일정부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만, 의료인의 면책특권 의식을 조장할 수 있어 이 또한 시행 후 유예기간 2년 동안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신속하고 공정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환경 조성 기대

이제 고액의 소송비용, 장기간의 소송기간, 입증책임의 부담 때문에 그동안 소송을 포기했던 수많은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중재원을 통해 저비용으로 신속한 피해구제를 받는 길이 열렸다.

이제 남은 과제는 정부의 의지와 의료인의 인식 전환이다. 정부는 중재원 산하의 의료분쟁조정위원회와 '의료사고 감정단'을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구성해야 하고, 운영에 있어서도 민주적 절차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의료인은 근거와 양심에 입각해 공정한 감정을 해서 의료사고 감정의 권위를 높여야만 한다. 환자단체, 소비자단체, 시민사회단체 또한 우리나라에 신속하고 공정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환경이 조성되도록 감시자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안기종 기자는 현재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