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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칼럼] 돈 없는 환자에겐 ‘그림의 떡

2015년은 약값제도 개선을

효과 좋은 신약 3종 중 2종… 보험-약값 갈등으로 비급여

돈 없는 환자에겐 ‘그림의 떡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세계 각국에서 개발한 신약을 구하기 어렵다. 국내에서 신약으로 인정 받아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다. (출처 동아일보)

 

네 살배기 민하의 소원은 엄마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는 것이다. 엄마는 9년째 폐암으로 투병 중이라 놀이공원은커녕 놀이터에 함께 가는 것도 벅차다. 그런 엄마가 최근 새로 개발된 약을 먹으면서 민하와 놀아주는 것이 가능해졌다. 민하는 엄마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신이 난다. 하지만 엄마가 먹는 약은 아직 정부에서 보험 적용을 하지 않아 한 달 약값만 1000만 원이 넘는다. 엄마가 민하와 하고 싶은 첫 번째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는 ‘약값 걱정 안 하기’이고, 열 번째 버킷리스트는 아빠가 없는 딸 민하의 결혼식장에서 손잡고 행진하기다.

 

필자가 속한 단체에 소개된 폐암 환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비단 민하 엄마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약값 걱정 안 하기는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환자와 환자 가족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다. 전 세계에서 개발된 신약 3종 중 2종은 우리나라에서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비싼 가격에 사용해야 하거나 사용해볼 기회조차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완치될 수 있다고 해도 한 달에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까지 하는 비급여 약값을 감당할 수 있는 환자는 드물다. 특히 암환자나 희귀난치성 질환자는 해당 신약이 아니면 치료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아 아예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 환자들은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고, 신약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병원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가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은 매년 증가해 현재 병원에 가지 못한 사람 5명 중 1명은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새로운 약들이 국내에서 보험급여 등재가 늦어지는 큰 이유는 약값을 낮게 깎으려는 정부와 제약사 간의 지루한 줄다리기 때문이다. 서로 책임 떠넘기기 속에서 지금도 많은 환자가 치료 기회를 놓치고 고통을 겪고 있다.

 

이는 보험급여와 약값 협상을 별도의 절차를 통해 2단계로 진행하는 현행 약값제도가 안고 있는 한계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신약 사용 허가를 승인하는 단계에서 이미 약의 효과는 입증이 됐는데도 보험급여 평가 단계와 약값 협상 단계에서 가격을 다투느라 보험급여가 지연되고 있다. 따라서 보험급여와 약값 협상은 별도의 절차로 진행하더라도 약의 효과가 인정되면 신속하게 보험급여를 적용해 환자가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아울러 국산 신약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중요하다. 신약 개발과 더불어 환자가 신약으로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 또한 반드시 보호받아야 한다. 민하 엄마의 열 번째 버킷리스트는 먼저 첫 번째 버킷리스트인 약값 걱정 않기가 해결돼야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민하 엄마들의 버킷리스트가 모두 성공할 수 있도록, 2015년에는 환자가 신약으로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각종 약값제도가 개선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