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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기고] 신해철이 남긴 선물, '예강이법' 탄생할까?

신해철이 남긴 선물, '예강이법' 탄생할까?

[기고] 신해철 씨가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 남긴 세 가지 선물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12월 10일 고(故) 신해철 씨 의료사고 과실 여부에 대한 감정을 9일 '대한의사협회'에 의뢰한 데 이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도 의뢰했다. 환자단체연합회에서 11월 10일 "고 신해철 씨 유족은 경찰이 의료사고 감정촉탁을 의사협회뿐만 아니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도 하도록 강력히 요구하십시오"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한 지 꼭 한 달만이었다.

 

 

신해철 씨 의료사고 사망

 

신해철 씨는 지난 10월 17일 오전 복통을 호소해 S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당일 오후에 장유착박리술를 받았다. 그러나 수술 후 극심한 통증이 계속 발생해 진통제 처방을 받다가 22일 오전 12시경 화장실에서 호흡 곤란으로 쓰러져 심폐소생술까지 받게 되었다. 오후 2시경 구급차로 급히 서울아산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검사 결과 오후 8시에 소장 천공을 발견돼 응급봉합수술에 들어갔지만 5일 후인 27일 소장 및 심낭 천공에 의한 패혈증으로 결국 사망했다.

 

신해철 씨 사망 후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 일부 동료 연예인들의 의료사고 의혹제기가 있긴 했지만 유족은 곧바로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 반전은 장례 마지막 날 일어났다. 동료 연예인들이 유족을 설득해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신해철 씨 사인 규명을 위해 유족이 S병원 원장을 형사고소하고 국립과학수사원에 신해철 씨 부검을 의뢰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형사고소 하루 만에 경찰은 S병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부검도 신속히 진행되어 1차 결과도 신속히 나왔다. 부검을 담당한 의사는 "소장뿐만 아니라 심낭에도 천공이 발생했고, 이 천공은 사람에 의해 발생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 우리나라에는 의료 감정을 하는 대표적인 기관으로 대한의사협회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있다.ⓒ대한의사협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이때부터 신해철 씨 유족과 S병원과의 의료과실 여부에 대한 진실공방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유족은 동의 없이 위축소수술을 했고, 수술 후 계속적인 통증을 호소했는데도 CT 등 추가적인 검사를 통해 신속히 소장 및 심낭 천공을 발견하지 못해 환자가 사망한 명백한 의료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S병원은 위축소수술은 한 적이 없고 단지 위벽을 강화하는 수술을 했을 뿐이고, 천공은 신해철 씨가 의사의 주의를 무시하고 음식물을 임의로 섭취해 발생했거나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으로 발생한 '지연성 천공'이라며 의료사고를 부정하고 있다.

 

이제 신해철 씨 의료사고의 진실 규명은 검찰과 법원의 몫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과연 S병원장의 의료과실이 인정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신해철 씨 의료사고 사망 사건과 거의 유사한 2011년 중견 배우 박주아 씨 형사 고소에서 의료진이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견 배우 박주아 씨 의료사고 사망과 검찰의 무혐의 불기소 처분

 

2011년 중견 배우 박주아 씨는 신우암으로 로봇수술을 받다가 십이지장에 2.5센티미터 천공이 발생하는 의료사고를 당했다. 박주아 씨는 4월 1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총 8시간에 걸쳐 신우암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직후부터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진통제 처방을 받다가 수술 종료 후 25시간이 지난 다음날 19일 오후 4시경이 되어서야 CT검사를 통해 천공사실을 발견했다. 문제는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천공으로 심각한 복막염이 발생했고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었지만, 수술실과 마취과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응급수술이 5시간이나 지연되어 오후 9시가 되어서야 이뤄졌다는 점이다.

 

박주아 씨는 이와 같이 로봇수술 중에 발생한 십이지장 천공 진단과 응급수술이 지연되어 중환자실에서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하고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박주아 씨 유족은 장례 후 의무기록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의료사고 개연성을 인지하였고, 2011년 7월 4일 환자단체연합회와 함께 의료진들을 형사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1년 6개월만인 2012년 12월 27일 의사협회 감정 결과를 토대로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 중견 배우 박주아 씨는 로봇수술 중에 발생한 십이지장 천공 진단 및 응급수술 지연으로 사망하였으나 검찰은 의사협회 감정 결과를 토대로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박주아 씨 사망사건과 신해철 씨 사망사건은 유사한 점이 많다. 배우 박주아 씨와 가수 신해철 씨 모두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예술인이다. 일반적인 개복수술이 아닌 박주아씨는 로봇수술을 받았고, 신해철 씨는 복강경수술을 받았다. 박주아 씨는 장유착이 심해 로봇수술 중에 천공이 발생했고, 신해철 씨는 장유착을 박리하는 복강경수술 중에 천공이 발생했다. 장유착이 심할 때는 개복수술에 비해 로봇수술이나 복강경수술은 천공 발생률이 높다.

 

다른 점도 몇 가지 있다. 첫째 신해철 씨는 부검을 했지만 박주아 씨는 부검을 하지 않았다. 둘째, 유족의 형사고소 시 경찰이 신해철 씨는 신속히 압수수색을 했지만 박주아 씨는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다. 셋째, 천공의 크기가 신해철 씨는 심낭 0.3센티미터, 소장 1센티미터이지만 박주아 씨는 십이지장 2.5센티미터였다.

 

중요한 것은 박주아 씨가 로봇수술 중 장유착이 심해 십이지장에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2.5센티미터 천공이 발생해 사망했지만, 검사는 의료인들에게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했다는 것이다. 신해철 씨에게는 장유착 박리 복강경수술을 받던 중 박주아 씨 천공보다 훨씬 작은 심낭 0.3센티미터, 소장 1센티미터 천공이 발생했다. 박주아 씨 선례를 참조하면 검사는 신해철 씨 경우에도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신해철 씨 의료사고 사망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료 감정 결과가 중요하다.

 

그래서 환자단체들은 박주아 씨 사망 사건 관련 검사의 무혐의 불기소 처분 경험을 토대로, 신해철 씨 의료사고 사망사건의 진실 규명이 제대로 되려면 경찰이 감정 촉탁을 의사들로만 구성된 대한의사협회뿐만 아니라, 의사 2인이 의료 감정을 하고 의료전문변호사, 현직 검사, 시민사회·소비자·환자단체의 소비자권익위원 3인이 검증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도 해야 한다고 촉구했던 것이다.

 

 

경찰이 우리나라 최초로 고 신해철 씨 사건을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감정의뢰

 

다행히 서울 서초경찰서가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도 감정 촉탁을 했고 이는 우리나라 의료사고 형사 고소 사건의 심층적인 수사 및 실체 진실 발견에 있어 획기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그동안 경찰은 의료사고 진상규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의료 감정을 대한의사협회에만 의뢰했고, 그 결과에 따라 판단했다.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감정결과가 유리하게 나올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불리하게 나올 경우에는 '가재는 게 편'이라며 의사협회 감정 결과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고, 이는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졌다.

 

실제 형사사건 감정결과는 민사소송과 달리 동료 의료인에 대한 형사 처벌 및 자격 정지·박탈로 이어질 수 있고, 감정하는 의료인에 대한 외부 감시기능이 없기 때문에 동료 의료인에게 불리한 감정을 하기 힘든 측면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의료사고 형사사건은 다른 영역의 형사사건에 비해 경찰의 기소의견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런 가운데 경찰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의료사고 형사고소 사건에 대한 감정의뢰를 의료인의 전문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현직검사, 의료전문변호사, 소비자권익위원의 외부 감시기능이 작동하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이제 경찰 수사단계부터 의사협회와 의료분쟁조정중재원, 두 곳의 의료감정기관이 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감정을 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자이면서 또한 서로의 감시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두 곳의 감정 결과가 동일하면 의료 감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담보되는 것이고, 만일 결과가 다르다면 경찰로 하여금 좀 더 정밀한 수사를 하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 신해철 씨가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 남긴 세 가지 선물

 

이로써 고 신해철 씨는 살아서는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인기 가수로서, 사회적 독설가로서 강한 흔적을 남겼고 죽어서도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 세 가지 큰 선물을 남겼다.

 

▲ 고 신해철 씨는 살아서는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인기가수로서, 사회적 독설가로서 강한 흔적을 남겼고 죽어서도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 세 가지 큰 선물을 남겼다. ⓒKCA엔터테인먼트

 

첫 번째 선물은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이제부터는 경찰에게 "신해철 씨처럼 수사해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동안 경찰은 의료사고 형사고소가 있으면 고소인과 피의자인 의료인을 차례로 불러 진술을 듣고 그 다음에 의사협회에 감정 의뢰해 받은 결과에 따라 상당수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해왔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경찰도 고 신해철 씨처럼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경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의무기록지, CCTV, 수술영상 등 진실규명에 필요한 중요한 증거자료를 신속하게 확보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선물은 소송의 승패를 좌우하는 의료 감정을 '대한의사협회' 뿐만 아니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도 의뢰하는 문화를 만든 것이다. 고 신해철씨 사망사건 이전에는 서울의 일부 검찰청에서만 의료 감정을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의뢰했다. 이번에 서울 송파경찰서가 경찰서 차원에서 의료 감정을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의뢰하는 첫 테이프를 끊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전국의 경찰서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에서도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적극적으로 의료 감정을 의뢰할 것으로 기대된다.

 

세 번째 선물은 민사소송에 비해 소액의 비용으로 객관적인 '5인 감정부'(의료인 2명, 현직검사 1명, 의료전문변호사 1명, 소비자권익위원 1명)를 통해 신속한 조정 및 중재가 가능한 의료분쟁조정제도가 피신청인의 조정 거부 또는 14일간 무응답으로 인해 각하되도록 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제27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을 조성한 것이다.

 

고 신해철 씨 부인 윤원희 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4시간가량의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환자에게 너무 불리한 의료소송 제도와 우리나라 의료 체계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들이 개선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 말이 계기가 되어 의료분쟁 조정신청이 있으면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무응답하더라도 바로 각하할 것이 아니라, 우선 조정절차를 자동으로 개시하고 다만 조정할 것인지 여부는 최종적으로 양당사자의 자유에 맡기는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 도입이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했다. 일명, '신해철법'이다.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 도입을 위한 "예강이법" 들어보셨나요?

 

여기서 한 가지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예강이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3학년 전예강(만 9세)은 3일 전부터 시작된 코피 때문에 동네 내과, 이비인후과, 종합병원을 거쳐 2014년 1월 23일 오전 9시 50분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러나 의료진의 잘못된 판단, 늦은 수혈, 전공의의 미숙한 요추천자 시술 등으로 7시간 만에 사망했다.

 

예강이 사망 후 유족은 진실을 알고 싶어 "5인 감정부"가 공정한 감정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했지만, 해당 병원의 거부로 각하되었다. 유족은 원하지 않았던 민사소송을 부득이 진행 중이고, 홈페이지(http://www.iamyekang.com)을 개설해 모든 진료기록을 공개해 놓고 양심적인 의료전문가들의 의견을 기다라고 있다. 병원 앞에서는 "진실규명 및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 도입"을 위한 릴레이 1인 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예강이 유족의 활동을 지켜본 의료사고 피해자들과 환자단체들은 오제세 의원이 국회에 대표 발의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 제27조 개정안을 "예강이법"이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고 신해철 씨 부인의 인터뷰 이후 언론방송에서 이를 "신해철법"으로 부르면서 약간의 혼란이 있다.

 

예강이 유족은 '의료분쟁조정법' 제27조 개정안을 "예강이법"이라고 부르든지 "신해철법"으로 부르든지 상관없다며 하루 빨리 법률 개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예강이 유족은 홈페이지(http://www.iamyekang.com)를 개설해 모든 진료기록을 공개해 놓고 양심적인 의료전문가들의 의견을 기다라고 있으며,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신해철법" 또는 "예강이법"을 대한의사협회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현재 조정신청건의 53%가 의료기관의 거부 및 14일 무응답으로 각하되는 점을 고려하면 국회의 빠른 개정이 절실히 요구된다.

 

신해철 씨가 죽어서 남긴 '의료분쟁조정법' 제27조 개정이라는 숙제가 너무나 불리한 우리나라 의료소송 제도와 의료체계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들이 개선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