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기사)

[오마이뉴스] 희귀병에 당첨됐지만, 수술은 안 할 겁니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는 노동뿐만이 아니라 주거와 교육 등에도 뿌리를 내리며 공동체를 갉아먹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와 함께 '양극화를 넘어'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양극화해소연대는 지난해 9월 전국 136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구성한 사회·경제 개혁 추진을 위한 연대기구다. 이 글은 기획 여덟번째는 의료 문제를 통해 들여다본 양극화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다. [편집자말]

거짓말인 줄 알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백혈병 환우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진석(32)씨는 환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건강해 보였다. 깔끔한 외모에 밝은 표정, 백혈병 환자는 '아파 보여야 한다'는 일반인들의 편견이 박씨 앞에서는 무력해 보였다.

 

지난 20일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실에서 백혈병 환자 박진석씨와 백혈병인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는 김주희(22)씨를 만났다.

 

5차례 입원에 치료비만 4000만원
 

 

세 아이의 아버지인 박진석씨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것은 지난 2004년 10월. 컴퓨터 수리 자영업을 하고 있던 그는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숨이 가쁘고 1주일 이상 감기 증상이 계속 나타나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징후가 좋지 않다"면서 피 검사와 엑스레이 검사를 권했다. 결과는 급성 골수암(백혈병). "다행히 의사가 아는 분이라 소견서와 검사된 내용을 꼼꼼하게 챙겨 주셨어요.

 

그래서 3차 병원(대학 병원)에 와서 수월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 안 그랬으면 재검사를 했을 거예요." 다행스럽게도 그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있어, 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거기다 백혈병이 발병하기 2년 전 쯤 들어놓은 보험 덕을 봤고, 주변에서 후원회를 조직해 힘을 보태줬다.

 

그렇게 해서 박진석 씨가 5차례 입원한 후 대학병원에 낸 총 진료비는 약 3300만 원. 검사비 등 기타 부대 비용까지 포함하면 4000여만 원이 정도가 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생활보호대상자이기 때문에 본인 부담금이 3300만원에 그쳤다. 그것도 '보험되는 약을 써달라고 사정사정해서' 줄어든 금액이다. 순수하게 진료비 총액만 따지면 1억 원에 이른다.

 

"아버지가 처음에 입원해 대학병원 원무과로 상담 받으러 가셨는데, 대뜸 '돈 있느냐, 직장 어디 다니느냐'고 물었다더군요. 암 세포가 뼈 속까지 침투했다면서 수술 안 하면 포기해야 한다면서…. 아버지가 마음이 많이 안 좋으셨던 것 같아요." 웃으면서 이야기 하던 그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박씨는 4차례 항암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골수이식 수술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여동생 골수와 비교해봤지만, 유전자 하나가 맞지 않아 수술 성공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당연히 이식 수술을 하라고 권하죠. 이식 안 하면 죽는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럼 환자 대부분은 골수 이식 수술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사실 살 수 있는 확률은 50%도 안 되는데…."

 

그가 수술을 거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골수이식을 하면 적어도 5000~6000만 원 이상의 돈이 필요한데 '자기 혼자 살자고' 가족들을 빚더미에 앉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이들 셋과 아내, 그리고 저 5명의 식구가 국가에서 주는 100만 원이 약간 넘는 돈으로 버티고 있지만, 만약에 수술을 받아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가족들은 어떻게 합니까? 제가 로또 병에 당첨됐다고, 가족들까지 벼랑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잖아요. 정상에서 좀 모자란 상태지만 지금처럼 즐겁게 살아야죠."

 

박씨는 태연하게 이야기 했지만 옆에 앉아 있던 그의 아내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남편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정신적인 고통을 겪은 아내는 남편의 병을 받아들이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

 

@TAG1@ "병 재발하면 치료 중단할 겁니다" 지난해 11월 말 어머니가 급성 골수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김주희씨는 지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어머니 간병을 하고 있다. 김주희씨의 어머니는 47세로 식당 일을 하면서 근근히 살았다.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혼자 살았던 어머니는 빈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맨 처음에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참다 못해 어머니가 병원에 가셨는데 병원에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이 아니라고 했어요. 당장 큰 병원에 가라고요. 3차 병원에 갔는데 어머니가 위험하다고, 오래 못 살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김주희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12월 31일 3차 병원에 정식으로 입원했다.

 

맨 처음 어머니는 '돈도 없고 살 가망도 없다'고 판단해 식사를 거부했다. 가족들이 어머니를 겨우 설득해 1차 항암 치료를 마쳤고, 2차 항암 치료를 진행 중이다. 1차 치료는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며 모은 돈 1500만 원으로 겨우 해결했다. 백혈병 발병 후 생활보호대상자로 등록돼 치료비를 그나마 많이 줄일 수 있었단다. 그러나 이후 일은 사실 대책이 없다.

 

"2차 항암 치료비 1000만 원은 이모한테 빌렸어요. 3차 항암 치료는 그 때 가서 생각하려고요. 검사를 해봤는데 외삼촌 골수가 이식이 가능하다고 해서, 3차 치료가 끝나면 수술을 할 계획 이예요. 그러나 만약에 병이 재발하면 치료를 중단하기로 어머니하고 약속을 했어요. 돈이 계속 들어가게 할 수는 없으니까."

 

김주희씨는 현재 이모와 둘이 번갈아가면서 어머니 간병을 진행하고 있다. 간병인을 쓰는 비용이 하루 5만원인 탓에 김주희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 옆을 지키기로 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22세 김씨에게 백혈병에 걸린 어머니를 책임지는 일은 너무 힘겨워 보였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간사는 "급성 골수암에 걸리면 의료 급여를 지원 받는 생활보호대상자는 4000만원 이상, 일반인은 1억 원 이상 진료비가 소요되고, 골수를 이식 받을 경우 최소 5000만원 이상이 더 들어간다"면서 "정부가 백혈병을 비롯한 암의 본인 부담률을 낮추는 등 조건을 개선시키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백혈병에 걸리면 가세가 기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안 간사는 "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 없는 서민의 경우 가족 중에 백혈병 환자가 생기면 집안이 풍비박산 날 수밖에 없다"면서 "백혈병을 비롯한 암 치료는 국가가 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것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