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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처방전 1장이면 충분? 환자 알 권리 '모르쇠'

[뉴시스아이즈] 처방전 1장이면 충분? 환자 알 권리 '모르쇠'

 

 

2013.10.21 뉴시스 박성환 기자(sky0322@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2000년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약물의 오남용을 줄이고, 환자의 정당한 알 권리를 위해 처방전을 2장 발행은 의료법상 의무화됐다.

의료법 시행규칙에는 의사가 환자에게 처방전을 발행할 때 약국제출용과 환자보관용 처방전 2장을 내주도록 규정돼 있다.

약물 과다투약 여부나 부적절한 투약을 사전에 차단하고, 환자가 무슨 약을 먹는지 알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발행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불법인데도 동네 병·의원에서는 이를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고, 환자들 역시 처방전에 대한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유명무실화되고 있다.



◇처방전 1장만 주는 동네 병·의원

“환자 자신이 무슨 약을 먹는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환자에게 약국제출용과 환자보관용 처방전 발행을 법으로 정한 만큼 이를 잘 지키도록 관리·감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행 의료법상 환자보관용과 약국제출용 처방전을 발행토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네 병·의원이 처방전 2장 발행 의무를 어기고 약국제출용만 발행하고 있다.

뉴시스 취재진이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 동네 병·의원 10곳의 처방전 2장 발행 여부를 확인한 결과 1곳을 제외하고 모두 약국제출용 처방전 1장만 발행하고 있었다.

또 환자 보관용 처방전을 요구하자 온갖 핑계를 대고 거부하거나 마지못해 발급해주는 병·의원들이 많았다.

실제 마포구의 한 의원에서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요구하자 의사는 “원하는 환자들이 거의 없는데 어떤 용도로 사용할 거냐”며 핀잔을 주더니 마지못해 발행했다.

심지어 환자용처방전은 원래 안 주는 거라고 말하는 병·의원도 적지 않았다.

약국제출용 처방전만 발급해준 서대문구의 한 이비인후과에서는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발급해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자 “대형병원은 2장을 발급하지만 동네 병원에서는 1장만 발급하는 게 규칙”이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이에 환자보관용 처방전 발급을 재차 요구하자 의사는 그제야 컴퓨터를 한참동안 뒤졌지만 환자보관용 처방전 양식을 찾지 못해 결국 약국제출용 처방전을 한 장 더 인쇄한 뒤 볼펜으로 직접 환자보관용이라고 적어 건네주기도 했다.



◇ 환자보관용 처방전 ‘나몰라’

상급 의료기관에서는 자동수납기계를 통해 2장의 처방전이 제대로 발행되고 있는 반면 동네 병·의원 대부분은 약국제출용 1장만 발행하고 있다.

의약품의 오남용을 차단하고, 환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처방전 2장 발행을 법으로 규정해 놓았다. 건강보험에서 지불하는 의사의 진료 수가에는 처방전 2장을 발행하는 대가로 20원50전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동네 병·의원에서는 환자보관용 처방전 발행을 꺼리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지난 8월20일부터 나흘 동안 10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동네의원에서 항상 처방전 2장을 받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9%에 불과했다.

또 응답자 가운데 53%는 ‘환자 보관용 처방전 1장을 더 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답했고, ‘가끔 1장 더 받은 적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전체의 38%에 불과했다.

동네 병·의원들이 환자의 알권리를 위해 지켜져야 할 환자보관용 처방전 발행을 꺼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상당수 의사가 자신의 처방 내역이 환자에게 남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환자보관용 처방전까지 내주는 것이 번거롭다는 입장이다.

또 실제 환자들이 처방전을 1장만 발행하더라도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의사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의사는 “실제 환자보관용 처방전까지 달라는 환자들이 거의 없다”며 “환자보관용 처방전까지 발행하는 걸 번거롭게 여기고, 처방 내역이 환자에게 남는 걸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처방전을 1장만 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발행한다고 해서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며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불법 대체 조제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약사들의 조제내역서 발급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처방전 2장 요구는 환자의 권리

현행 의료법상 처방전 1장만 발행해도 처벌규정이 없다보니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환자보관용 처방전에 대해 환자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보니 불법적인 행태가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환자가 처방전 두 장을 요구하는데도 응하지 않는 병·의원에만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지난 7월15일 보건의료직능발전위원회에서 처방전 2매 발행을 원칙으로 하고, 환자의 환자보관용 처방전 발행요구를 거절할 경우에만 행정처분키로 결론 내렸다.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이 지난해 12월 처방전 2장 발행을 어긴 의사에게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남윤인순 의원은 약사가 복약지도를 문서로 제공하지 않으면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약사법 개정안도 함께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의료계가 개인정보 유출과 복사용지 낭비, 처방 내역 공개에 대한 부담 등의 이유로 반발하면서 법안 통과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진석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환자가 자신이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기본적인 권리의 하나”라며 “정부가 병의원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더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국민들이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받아놓는 것을 잘 모르는 것도 문제”라며 “정부차원에서 환자보관용 처방전 발행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349호(10월28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