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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들은 모르는 암환자의 속내·②] 산정특례제도, 5년 뒤 일괄만료

암환자들, 완치돼도 5년 뒤 '폭탄' 떨어진다.

[대선후보들은 모르는 암환자의 속내·②] 산정특례제도, 5년 뒤 일괄만료

                                                                                     프레시안 2012.11.14 김윤나영 기자

 

 

내 가족 중에 암 환자가 생길 확률은 얼마나 될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평균 기대수명인 81세까지 살 때 앞으로 3명 중 1명(36.2%)은 암에 걸린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가족 중 언젠가 암 환자가 생길 확률은 80%에 달한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암 환자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었고 올해 9월에는 130만 명을 경신했다. 가족까지 고려하면 암으로 고통받는 국민이 800만 명이 넘는 셈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역대 최대 기록으로 꺾었을 때 표 차이가 530여만 표였음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암 생존자도 늘고 있다. 2000년부터 2009년 말까지 생존하고 있는 암 환자는 80만 명이고, 이 가운데 절반(49.7%)은 60세 미만으로 경제활동인구에 속하는 연령층이다. 이들을 방치하면 양극화 문제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암 환자를 비롯한 중증환자의 치료뿐만 아니라 완치 이후의 삶의 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프레시안>은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함께 대표적인 중증질환자인 암 환자의 암 제거 이후의 삶을 조명하고, 역대 정부와 대선 후보의 보건의료정책을 분석하는 기사를 마련했다. <편집자>


- 대선후보들은 모르는 암환자의 속내
<1>"암 진단 받고 회사 그만두면서 거짓말했어요"

지난해 유방암 2기를 진단받은 서은숙(가명·41) 씨는 다른 유방암 환자보다 상대적으로 치료비를 많이 썼다. 암이 임파선으로 전이됐고, 지난해 6월 임파선 33개를 자르는 대수술을 했다. 500만 원이면 된다던 치료비가 2000만 원으로 불었다.

서 씨와 같은 환자를 위해 보건복지부는 암, 뇌심혈관계질환, 희귀난치성질환 등 중증질환자를 대상으로 5년 동안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의 5%만 내도록 하고 나머지 95%는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는 '중증환자 산정특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산정특례제도의 혜택을 받아도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는 지원되지 않는데다, 특례 기간 전후에도 갖가지 합병증 치료비와 재발검사 비용 등이 드는 탓이다.

암을 제거한 뒤 그는 합병증에 시달렸다. 항암치료로 다리에는 혈전이, 임파선 절개수술로 팔에는 림프부종이 생겼다. 혈전은 일단 치료했지만 림프부종 때문에 수술한 지 1년 반이 지나도록 여전히 팔 한 쪽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서 씨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까지 산정특례를 적용받아 1000원을 내고 림프부종 치료를 받았다. 두 달 뒤인 3월 가라앉았던 림프부종이 재발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림프부종 치료가 제한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잘 가라앉혀놔도 무거운 것을 들거나 조금만 자극 받으면 조심해도 금세 붓는다"며 "부종이 평생 지고 가야 하는 업이 됐다"고 말했다.

 


5년 뒤 합병증 앓아도 '암'만 없으면 된다?

서 씨가 암 진단을 받은 지 5년 후에도 암 합병증을 앓는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5년 안에 암이 재발하거나 전이되지 않으면 산정특례 기간이 일괄적으로 만료되기 때문이다. 특례가 끝나면 5%였던 본인부담금이 입원진료는 20%, 통원진료는 30~60%로 적게는 4배에서 많게는 12배가량 오른다.

2005년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김정은(가명) 씨에게는 골수이식 후 합병증인 이식편대숙주반응이 간, 췌장, 위, 대장, 방광, 안구 등 거의 모든 장기에 나타났다. 암 합병증을 치료하던 중 스테로이드제 과다투여로 그는 골다공증, 대퇴골두무혈성 괴사, 관절염 등 2차 합병증을 겪었다.

5년 뒤 산정특례가 만료된 이후에도 그는 6개월마다 급성골수성 관련 검진, 유방암 및 자궁암 검진과 정형외과 검진을 받아야 했다. 매달 섬유근통 및 관절염 치료도 받고 있다. 그가 매일 복용하는 약만 해도 진통제, 골다골증약, 호르몬제, 섬유근통약, 칼슘제, 혈압약, 수면제 등 13개에 달한다. 지금까지 그는 골수이식비용을 포함해 치료비로 총 1억5000만 원을 썼지만, 암이 발견되지 않아 특례가 중단됐다. 진료비가 6배로 뛰었다.

암시민연대 등 환자단체들은 "암 치료의 대부분은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장기이식 후에 발생하는 각종 합병증을 치료하는 것"이라며 "5년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합병증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라면 경제적 부담은 가중되고 이러한 환자에게는 오히려 산정특례를 더 유지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 고가의 암 진단 장비인 PET-CT. ⓒ연합뉴스

 


암 검사비 40만원→ 5년 후 120만원…"의학적으로 암 추적검사 필요"

합병증을 앓지 않아도 병원비가 들기는 마찬가지다. 암 환자들은 5년 뒤 '완치' 판정을 받은 이후에도 재발이나 전이 여부를 알기 위해 매년 추적검사를 받아야 한다.

국립암센터가 남성 암 환자 1만4000여명을 7년간 추적 조사해 지난 2007년 내놓은 결과를 보면, 암 이력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다른 암에 걸릴 확률이 2.3배 높다. 남성 암 환자가 다른 암(2차 암)에 걸릴 확률은 폐암이 2.1배, 대장암 4배, 간담도췌장암 1.9배, 비뇨생식기암이 2.6배 높다. 한국유방암학회가 발간한 '2012 유방암백서'를 보면 유방암 환자 가운데 20~30%는 암이 재발한다.

암 환자였을 때는 본인부담금 5%가 적용되던 암 검사는 5년 뒤 완치 판정을 받으면 대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된다. 그 결과 PET의 경우 산정특례제도를 적용했을 때 3만5000원이었던 환자부담이 5년 이후부터는 43만 원으로 늘어난다.

2년 차 암 환자인 이지민(가명·38) 씨는 "암에 걸린 이후로 의료급여 1종 수급자가 됐는데, 5년 뒤 재발하지 않으면 수급자 자격이 박탈된다"며 "지금은 5만 원만 내고 암 검사를 받고 있지만, 주변 환자들이 5년 뒤에 검사비가 백만 원 단위로 늘어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덜컥 겁이 난다"고 토로했다.

이혜경 한국유암암환우총연합회 부회장은 "보통 추적검사 비용이 산정특례기간 중에는 40~50만 원 정도 들지만, 5년이 지나면 3배 정도 뛰어 120~150만 원정도 된다"며 "아무리 적게 검진해도 100만 원가량이 들기 때문에 암 검사를 못 하시는 분도 많다"고 말했다.

 


"4년 뒤 큰아이 대학 가는데…암 검사 포기할 듯"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암 검사를 포기하는 암 생존자도 생긴다. 국가암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07년 암 환자 가운데 다른 암 검진을 받은 암 환자는 42%에 불과했다.

서 씨는 "주변 암 환자 중에 5년 뒤 암 검사비용 87만 원이 부담스러워서 피 검사만 하고 간다는 사람도 있다"며 "특례기간이 끝나는 4년 뒤 큰아이는 대학생이 되고 둘째는 고등학생이 되는데, 그때는 나도 피만 뽑고 재발 검사를 포기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환자단체들은 첫 특례기간 종료를 앞둔 2010년 "정기적인 추적검사는 암 환자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치료의 일환"이라며 "5년 이후의 추적검사가 선택사항인 것처럼 산정특례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암 투병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수많은 암환자와 가족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무조건 5년이 지나서 합병증이 있든 의학적으로 아무리 필요하든 암만 없으면 일괄적으로 특례가 중단되는 것은 문제"라며 "의사의 판단에 따라 의학적으로 필요한 환자에게는 특례를 존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더 나아가 "차라리 비급여 진료를 없애고 본인부담 연간 상한제 100만 원제를 시행한다면 산정특례라는 불안한 제도 자체가 필요 없어진다"며 "현재 1인당 200~400만 원인 본인부담을 연간 100만 원으로 낮추고 고가의 비급여 진료를 건강보험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상 입원' 혜택 받는 의료수급권자 A 씨의 가계가 파탄 난 이유?

2005년 암 환자 산정특례제도를 도입했을 당시,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의 90%를 지원했다. 2009년 말부터 지원 비율을 95%로 높였지만, 암 환자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성은 2006년 71.0%에서 2009년 67.7%, 2010년 70.4%로 오르지 않거나 떨어졌다. 건강보험이 지원하는 항목보다 건강보험이 지원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2005년 암에 걸리고 의료급여 1종 수급자가 된 A 씨의 사례를 보자. 2006년 항암 치료를 마쳤을 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비는 총 6950만 원이었다. A 씨가 낸 본인부담금은 16만 원으로 전체 치료비의 0.22%에 불과했다. 나머지 6934만 원(99.78%)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냈다.

그런데 암 치료비로 겨우 16만 원을 낸 A 씨는 치료를 마친 후 가계 파탄을 겪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 4356만 원이 문제였다. 병원은 항암치료제 등 주사료 2571만 원, 선택진료비 814만 원, 암 검사료 525만 원, 수술비 471만 원, 치료재료대 140만 원 등을 100% 환자 부담으로 청구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진료비를 나눠 부담하는 것과는 달리, '비급여' 진료비는 환자가 비용 전액을 부담한다. 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법정 환자 본인부담금'을 통해 정부가 표준가격 책정에 관여할 수 있지만, 비급여 항목은 의료기관이 자유롭게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중증환자 산정특례 제도에 구멍이 많다고 지적되는 것은 그래서다. 정부가 중증환자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급여) 항목 95% 지원'을 설사 100%로 늘려도, 의료기관이 그 이상의 비급여 진료비를 올려 청구하면 환자 부담은 줄지 않는다. 물론 A 씨는 '이론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만 받으면 되지만, 현실에서는 항상 비급여 진료가 수반된다.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 대선후보가 '암 등 중증환자 진료비 100% 국가 부담(박근혜)', '실질적 입원 무상의료(안철수)', '입원 진료비 보장률 90%로 확대, 연간 진료비 100만 원 상한제(문재인)' 등의 공약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항목'에 한해 이미 정부는 지금도 중증환자 진료비의 95%를 부담하고 있으며, 지금도 연간 진료비 400만 원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고, 의료급여 1종 수급자에게 입원 무상의료를 실현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 1종 수급자로 '입원 무상의료'를 적용받은 A 씨는 입원비 등을 포함한 비급여 진료비 4356만 원(전체 A 씨가 낸 돈의 99.6%)을 냈다.

공약의 실효성은 이들 대선후보가 A 씨의 진료비 중 16만 원(급여)에 손댈 것인가, 아니면 4356만(비급여) 원에 손댈 것인가에 달려 있다. '가계 파탄'의 핵심은 비급여 진료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