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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병원 처방전, 두장 받으세요

병원 처방전, 두장 받으세요

2010.08.13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우리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의사는 처방전을 발행해 준다. 이때 환자의 경우 약국제출용 처방전과 환자보관용 처방전 두 장을 받아야 한다. 2000년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의료법시행규칙 제15조 2항에서 의사는 환자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처방전을 의무적으로 두 장 발행하도록 했다.


의사는 환자를 진료한 후 처방전을 동시에 세종류로 발행한다. 원본에 해당하는 의사 보관용 처방전과 약국제출용 처방전과 환자보관용 처방전이다. 환자는 이 중에서 약국제출용 처방전과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의사에게서 발부 받는다. 약국제출용 처방전은 약국의 약사에게 제출하고 환자보관용 처방전은 환자가 보관한다.


자동수납기계를 통해 처방전이 발행되는 대형병원에서는 약국제출용 처방전과 환자보관용 처방전 두장이 동시에 나오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지만 동네 의원의 75% 이상은 약국제출용 처방전 한 장만 발행해 준다.


작년에 머리에 사마귀 같은 것이 나서 직장 근처의 모 피부과에서 검사와 함께 약 처방을 받았다. 삼일 후에 다시 피부과를 방문해 약 처방을 받고 계산을 한 후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한 장 더 발행해 달라고 간호사에게 얘기했다. 직장 업무 중에 병원에 가는 것이 눈치가 보여서 집 근처의 피부과에서 치료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간호사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의사선생님께 한번 물어보겠다고 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나를 진료실로 다시 안내했다. 의사는 ‘왜 처방전이 필요하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집 근처 가까운 피부과에서 치료받으려고요’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의사는 ‘집 근처 피부과에서 치료받으면 되지 왜 구지 처방전을 받으려고 하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여기서 처방받은 약이 잘 들으니까 집 근처 피부과에서도 동일한 약을 처방받으려고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의사는 ‘치료는 다 똑같으니까 처방전 없어도 돼요’라고 얘기했다. 나는 ‘약이 수십가지나 있는데 어떻게 치료가 다 똑같을 수 있어요?’라고 반문하며 처방전 발부를 계속적으로 요구했다. 그랬더니 의사는 ‘뭐 이런 앞뒤 막힌 사람이 다 있어’라고 버럭 화를 내더니 급기야 ‘처방전 필요하면 약국에 가서 복사해 달라고 하세요. 나는 떼 줄 수 없어요’라고 했다. 결국, 나는 환자보관용 처방전은 받지도 못했고 오히려 간호사와 진료 대기중인 환자들에게까지 별종 환자처럼 인식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보건소에 신고하려고 하다가 꾹 참았다.


동네 의원에서는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발행해 주었다가 환자가 이를 분실하면 개인 질병정보가 노출될 수 있고 전문용어로 된 처방전 내용을 환자들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복사용지 비용만 낭비하는 것이고 의사 본인의 지적재산권에 해당하는 고유 비법 처방을 다른 의사들에게 공개되어 경제적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발행하지 않는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관리 부주의로 인한 개인 질병정보 노출 위험성은 처방전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처방전 내용에는 중요한 개인 질병정보가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그리고 진료수가에는 환자보관용 처방전 발행에 소요되는 복사용지 비용도 포함되어 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처방전에 기록된 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한방도 아닌 양방에서 고유 비법 처방이라는 용어는 넌센스이고 반드시 발행하는 약국제출용 처방전에도 이러한 내용이 모두 포함된 이상 의사들의 변명은 설득력이 없다.


의사들이 환자보관용 처방전 발행을 꺼리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환자가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발급받아 의사의 의약품 처방 행태를 알게 되면 의사들의 과도한 의약품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고 이는 환자의 진료비 및 건강보험 재정 절약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서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사후 의료소송 입증자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 즉, 환자들의 처방전 보관은 결국 동네의원의 수입 감소와 의료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감기는 병원에서 치료받지 않아도 일주일 푹 쉬고 나면 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감기로 동네의원에 가면 한번에 5~6알의 약을 복용하도록 처방해 준다. 실제 5~6개의 약 중에 감기 치료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약은 2~3개에 불과하다. 불필요한 소화제, 항생제 등이 추가된 경우가 많다. 이는 환자의 진료비와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약 중에는 ‘병용 금기약’이라는 것이 있다. 이 약과 저 약을 같이 쓰지 말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밝힌 병용 금기약은 수백 가지에 이른다. 또한 병용 금기약 중에는 연령에 따라 쓰면 안되는 약도 수백가지나 된다. 병용 금기약을 투약 받으면 심하게는 사망할 수도 있다. 특히, 아이들은 신체 구조상 성인과 다른 약 용법을 갖고 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이런 병용 금기약을 매년 수천 건씩 처방하고 있다.


문제는 병용 금기약을 처방받아 약을 먹은 환자가 야밤에 거품을 물고 응급실에 가도 무슨 약을 먹었는지 보호자가 다른 의료진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때도 그 동안 모아둔 처방전만 있다면 의료진이 원인을 쉽게 파악해 적정한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인데 말이다. 

       

이와 같이 처방전을 두장 발급 받는 것만으로도 의약품의 과도한 오남용을 방지하고 환자 치료비와 건강보험 재정을 절약하고 의료사고 예방 효과 및 사후 의료소송 입증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는데 동네의원에서는 왜 처방전을 한 장만 발급해 주는 것일까? 그것은 처방전을 두장 발급하지 않아도 의사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에서는 처방전 두장 발급 의무화만 규정할 것이 아니라 위반시 처벌규정까지 신설해 환자의 알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다만, 처벌규정이 없는 현재로서는 환자가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발급해 달라고 요청했는데도 의사가 이를 거절하면 관할 보건소에 신고하는 방법뿐이다.


화재를 대비해 항상 걸어놓은 소화기는 귀찮은 존재이지만, 화재가 발생했을 때 큰 역할을 해 주듯이 ‘환자보관용 처방전’ 보관은 여러분의 재산과 생명을 지킬 뿐만 아니라 의료사고로부터 여러분을 든든히 보장해 줄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