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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환자들이 대형병원만 찾는 이유, 모르십니까

환자들이 대형병원만 찾는 이유, 모르십니까

[주장] 대형병원 외래 약값 인상 논란... 보건복지부의 속셈이 보인다

 

2011.01.14  안기종(angijong)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 남소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발표한 '2009년 건강보험 요양기관 개·폐업 현황'에 의하면 2008년에만 동네의원 1400여 곳이 폐업했고 매년 폐업하는 동네의원의 수는 급증하고 있다.

동네의원의 수입 감소로 인한 폐업 원인을 의사들은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의사들은 대형병원의 약값을 대폭 인상하면 환자들이 다시 동네의원으로 발길을 돌릴 것으로 예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들의 이러한 의견을 일명 '의료기관 종별 외래 약제비 차등화 방안'으로 만들어 보건복지부에 제안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11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제도개선소위원회을 열어 '대형병원 경증환자 집중화 완화대책'의 일환으로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는 환자의 외래 약제비 본인부담률을 현행 30%에서 각각 40%, 50%, 60%로 인상하고 의원은 현행과 같이 30%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을 다수결로 통과 시켰다.

당초 감기 등 대형병원을 이용하는 다빈도 50개 경증환자만을 대상으로 할 계획이었으나 논의과정에서 암 등 중증질환자와 희귀난치성질환자까지 포함되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보건복지부는 1월 말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을 열어 최종의결한 후 7월부터 시행하겠다고 한다.

동네의원 놓아두고 대형병원에 가는 진짜 이유

환자들이 동네의원 놔두고 집에서 멀고, 의사를 만나는 데만 몇시간씩 대기해야 하는, 거기다 병원비까지 비싼 대형병원에 가는 이유가 뭘까? 동네의원 의사들은 대형병원의 약제비가 환자들에게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라서 대형병원에 환자들이 몰린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상급종합병원(주로 대학병원)의 외래 본인부담률은 약제비 30% 이외에도 진찰료가 100%이고, 진료비, 검사비 등은 60%이고 여기에 선택진료비도 20~100%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대형병원의 외래 병원비는 현재 수준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럽다.

상황이 이런데도, 환자가 가깝고 비용도 저렴한 동네의원을 놔두고 대형병원을 찾는 진짜 이유는 뭘까? 동네의원 의사들이 들으면 상처 받겠지만, 그것은 동네의원의 치료실력 및 의료서비스 질적 수준이 대형병원에 비해 월등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네의원의 현실을 외면하고 동네의원의 수익 감소를 이유로 환자들의 대형병원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암 환자와 같이 중증 환자의 경우, 경증치료를 위해 동네의원을 방문해도 의료사고가 날까봐 의사들이 치료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외래로 항암치료을 받는 암 환자들 중엔 감기와 같은 경증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지금까지는 항암치료을 받으러 갔을 때 경증 치료도 함께 받았었다. 하지만 앞으로 약값이 2배로 인상되면, 약값이 부담스러운 암 환자들은 대형병원에서는 항암치료만 받고 집에 오면서 동네의원에 들러 경증치료를 다시 받아야 한다.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증환자들에게 이러한 불편과 육체적 고통을 주는 것이 과연 옳을까?

약값 올려 두 마리 토끼 잡으려는 보건복지부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 남소연

 


겉으론 '대형병원 경증환자 집중화 완화대책'이라 그럴 듯하게 포장했지만, 보건복지부가 당초 계획과 달리 대형병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암 등 중증질환자와 희귀난치성질환자까지 포함해 전체 환자를 대상으로 외래 약값을 인상하려는 궁극적인 이유가 '지난해 1조 3000억 원이나 난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한 꼼수'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한 번 가정을 해보자. 대형병원의 외래 약값을 최대 2배 올려 그동안 대형병원을 이용한 모든 환자가 동네의원으로 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왜냐하면, 동네의원은 대형병원에 비해 약 처방기간이 짧아서 여러 번 내원해야 하고, 동네의원의 외래 진료비 환자 본인부담률이 대형병원의 절반 수준(상급종합병원 60%, 의원 30%)이어서 반대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률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형병원이 외래 약값을 2배로 인상해도 동네의원의 의료서비스 질적 개선이 없는 한 환자들은 여전히 대형병원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환자가 대형병원의 외래 약제비를 30% 더 내니까 건강보험 재정은 그만큼 절약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가 제안한 '의료기관 종별 외래 약제비 차등화 방안'을 들어주어 동네의원들의 민원을 처리하면서, 대형병원 이용 환자들의 약값을 최대 2배까지 올려서 년간 수 천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또 정부는 최근 들썩거리는 물가를 잡겠다고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 공공요금뿐만 아니라 대학 등록금까지 동결 시키고 있는 마당에, 서민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약값을 대폭 인상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대형병원의 외래 경증환자 쏠림현상을 해소하고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정책추진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보건복지부의 해법이다. 의원, 병원 등 의료공급자에 대한 채찍이나 당근은 없고 환자에게 채찍만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병원 쏠림현상의 원인 제공자는 불만족스러운 의료서비스 제공으로 환자들의 신뢰를 잃은 동네의원이지 환자가 아니다. 따라서 보건복지부는 환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 것이 아니라 동네의원의 의료서비스 질을 향상시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안기종 기자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