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에서 선택진료비를 제외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환자단체들은 허탈감을 금치 못했다. 가계 파탄의 원흉으로 꼽히는 비급여(비보험) 진료비 가운데 1위를 차지하는 항목이 바로 선택진료비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선택진료제에 관한 환자들의 불만을 듣고, 이 제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왜곡돼 왔는지를 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신소윤(가명·33) 씨의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다. 갓 18개월을 넘긴 아이는 선천성 심장병으로 13차례 수술을 받았다. 신 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13개월 이상 병원에서 아이를 간병하며 지금까지 5000여만 원을 병원비로 썼다.
암·심장 질환·뇌 질환·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의 95%를 국가가 지원한다. 병원비 부담의 핵심은 비급여(비보험) 진료비다. 신 씨가 내는 비급여 진료비 중 가장 부담이 큰 것이 바로 선택진료비였다.
선택진료비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5년차 이상 조교수나 10년차 이상 전문의에게 진료받을 때 환자가 내는 추가 비용이다. 병원은 진찰료의 55%, 입원료의 20%, 마취료의 100%, 처치 및 수술료의 100% 이내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으로 선택진료비를 책정할 수 있다.
지난해 5개월간 아이가 입원했을 때 신 씨가 낸 병원비 2240만 원 가운데 선택진료비는 1270만 원으로 57%를 차지했다. 2011년 두 달간 입원했을 때는 병원비 1300여만 원 가운데 선택진료비가 900여만 원으로 70%에 달했다. 신 씨는 "한 달에 300만 원 버는 일반 회사원이 두 달에 1300만 원이라는 병원비를 감당하기는 정말 어렵다"고 호소했다.
▲ 한 대형 병원의 신생아집중치료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
"아이가 심장병 앓아서 대형 병원밖에 못 가는데…"
문제는 천문학적인 병원비가 드는 중증 환자에게 선택진료는 사실상 강제에 가깝다는 점이다. 신 씨는 "아이가 감기에 걸리더라도 일반 소아과 의원에 가면 '중한 아이는 볼 수 없다'고 거절한다"고 지적했다. 할 수 없이 대학 병원에 가지만, 담당 의사에게는 무조건 선택진료가 붙었다.
"일반 선생님으로 해달라고 하면, 병원에서 아이가 심장 수술을 해서 경력 있는 선생님이 봐야 한다고 말해요. 부모 마음에는 그대로 따르게 되죠. 그런데 선택진료를 하면 진료비, 수술비가 전부 두 배예요. 소아심장과 선생님뿐만 아니라 수술할 때 마취 선생님에게도 자동으로 선택진료비가 붙어서 비용이 150%, 200%예요. 부모는 돈 아끼자고 아이한테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없어서 병원이 하자는 대로 서명을 하지만, 비용을 무시할 수는 없죠."
신 씨는 "상충되는 진료를 하면 안 돼서 아이가 아프면 반드시 담당 교수 한 명만을 뵙고, 다른 과 진료가 필요하더라도 담당 교수를 통해야 한다"며 "우리는 담당 교수를 평생 봬야 하는데 매번 선택진료비를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담당 교수님이 말씀하셨어요. '의사 면허 따고 5년이 지나면 무조건 특진(선택진료)이 붙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선택진료비를 환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 병원에서는 그만큼 경력 있고 능력 있는 의사에게 진료 받으니 당연히 환자가 돈을 내야 한다고 하지만, 그 비용을 왜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레지던트 선생님 뵙자고 (대형 병원에) 가는 건 아니잖아요."
선택진료비, 정부 묵인 속에 '가계 파탄' 1등 공신
선택진료가 병원 수입 증대에 쓰이는 대표적인 효자 항목이라는 점은 병원도 부인하지 않는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32개 종합병원을 상대로 2005년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특정 과 의사를 선택진료 의사로 구성한 이유로 "해당 진료과의 수익 비중이 크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50%를 차지했다. "해당 진료과 의사가 2인 이하라서"가 35.7%를, "선택진료 대상에서 제외된 해당 진료과 의사들의 반발 때문에"가 14.3%를 차지했다.
도입 취지부터 병원의 수익 보전을 위한 것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선택진료제는 1963년 국립의료기관 의사들이 사립대학병원 의사보다 수입이 낮은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특진 제도'라는 이름으로 도입됐다. 이후 정부의 묵인 속에 민간 병원들도 앞다퉈 자체 내규로 특진 제도를 임의로 도입했고, 정부는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 파업의 여파로 2000년 의료법을 개정해 선택진료제를 아예 법제화했다.
정부의 묵인 속에 선택진료비 규모는 점점 커져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윤인순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선택진료비가 상급종합병원 44곳의 전체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7.86%에서 2011년 8.27%로 늘었다. 상급종합병원의 전체 진료비는 2007년 8조786억 원에서 2011년 10조8929억 원으로 34.8% 증가한 데 비해, 선택진료비는 2007년 6348억 원에서 2011년 9009억 원으로 41.9% 늘었다.
건강보험공단의 2010년 진료비 실태조사를 보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 가운데 비용 1위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선택진료비(26.1%)였다.
▲ 선택진료 의사를 선택하면 검사비 등에도 자동으로 선택진료비가 붙는 경우가 많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
환자단체 "폐지 후 건강보험 수가 반영" vs 병원 "존치하되 환자 선별 지원"
선택진료제 폐지를 둘러싸고 환자단체와 의료기관단체는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는 지난 2007년 "대학 병원은 이미 상대가치 수가와 종별 가산률을 지원받고 있다"며 "여기에 선택진료비까지 부과하는 것은 중복 수혜"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미 진료 난이도와 의사의 숙련도 등에 따라 의료기관별로 수가를 차등 지급하고 있으며(상대가치 수가), 의료기관 종류에 따라 수가를 달리 부과하고 있다는(종별 가산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미 정해진 수가에 의원급 15%, 병원급 20%, 종합병원 25%, 상급종합병원 30%를 더 주고 있다.
환자단체들은 선택진료비를 폐지하는 대신 기존의 의료기관 질 평가에 반영해 의료수가를 어느 정도 보전하자고 주장한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도 선택진료비를 폐지하는 대신 건강보험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선택진료제를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의협은 지난해 11월 "의원급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료인 중에는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인 못지않게 탁월한 의료기술을 보유한 경우가 많다"며 이와 같이 주장했다.
대한병원협회는 지난해 11월 "선택진료비 손실분에 대한 수가 보전 없이 선택진료비를 폐지하면 병원들의 경영난이 우려된다"며 "(선택진료제를 존치하는 대신) 기초수급자나 차상위 계층, 희귀난치성 질환자 등을 선별해 건강보험이나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대형 병원들은 선택진료비가 없으면 경영난이 우려된다면서도 정작 선택진료비가 어떻게 쓰이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선택진료비가 없으면 병원이 정말로 망하는지 경영 수지를 투명하게 공개한 다음 정부와 협상해 건강보험 수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중재안을 내놨다.
4대 중증질환, 3대 비급여 빼면 반쪽짜리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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