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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왜냐면] 정부의 약가 일괄인하 환영한다

[왜냐면] 정부의 약가 일괄인하 환영한다

 

2012.04.02 한겨레신문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4월1일부터 시행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약가 일괄인하 조처 때문에 정부와 제약사 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이번 조처로 전체 의약품 가격이 평균 14% 낮아지고, 정부는 올해 약 1조7000억원의 약제비를 절약해 건강보험과 국민의 약값 부담을 줄일 계획이다. 반면 제약사들은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가혹한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최근 항암제 등과 같이 환자 치료에 꼭 필요한 의약품조차도 건강보험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환자 전액부담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렇듯 건강보험 재정 악화는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을 위협하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말기 간암환자의 생명을 몇달 연장하는 효과가 입증된 간암치료제 ‘넥사바’가 우리나라에서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었다. 하지만 환자 본인 부담금이 5%인 다른 항암제와 달리 50%로 결정되었다. 이유는 넥사바의 생명연장 효과에 비해 제약사가 높은 약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 달 약값이 약 280만원이니까 환자는 매달 약 140만원을 부담한다. 환자에게는 여전히 부담되는 금액이다.

 

그런데 올해 3월12일 인도 특허청은 제약사 ‘바이엘’의 오리지널약 ‘넥사바’를 자국 제약사 ‘낫코’로 하여금 성분이 동일한 복제약(제네릭)을 생산·판매할 수 있도록 강제 실시를 허락했다. 낫코사는 넥사바 오리지널 약값보다 97% 낮은 가격(한달 약값 약 20만원)으로 복제약을 판매할 예정이다.

 

2003년 우리나라에서도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에 대한 제약사 ‘노바티스’의 높은 약값(한달 300만원) 요구 때문에 환자들은 자기치료 목적으로 인도 제약사 낫코로부터 복제약 ‘비낫’을 오리지널 약값의 4% 가격(한달 12만원)으로 수입해 사용했었다.

 

신약의 특허기간이 만료되면 복제약은 어느 제약사나 생산·판매할 수 있다. 막대한 개발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복제약의 가격은 오리지널 약에 비해 아주 저렴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복제약 가격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인도 제약사들이 넥사바나 글리벡 복제약을 오리지널 약값의 90% 이상 인하된 가격으로 생산·판매하는 것을 보아도 우리나라 복제약의 가격이 얼마나 높은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신약 개발이 아니라 이러한 복제약 생산을 통해 성장했다.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투자보다는 특허 만료 신약을 카피한 복제약을 생산한 뒤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 매출을 올렸다. 이러한 복제약 시장에서의 마케팅 과잉경쟁은 필연적으로 의사·약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관행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 의약품 가격 결정 및 유통 시스템은 심각하게 병들게 되었다.

 

나는 2009년부터 고지혈증 때문에 제약사 ‘화이자’의 ‘리피토’를 복용하고 있다. 리피토 한정당 가격이 917원인데 이번 조처로 663원으로 28% 인하되었다. 리피토 10㎎ 한정당 254원의 환자 및 건강보험 부담이 줄어든다. 1인당 연간 9만2710원이 절약된다. 우리나라도 고지혈증 환자 100만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100만명의 고지혈증 환자가 모두 리피토를 복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927억원이 절약된다.

 

나의 아내는 항암제 글리벡을 복용하며 평생 병원을 오가며 각종 검사와 치료를 해야 하는 백혈병 환자이다. 나는 갑상샘 호르몬과 고지혈증 약을 평생 복용해야 하는 암환자이면서 만성질환자다. 우리 가족에게 국민건강보험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생명줄’이다. 비단 이것이 우리 가족에게만 국한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전문가들은 2010년 건강보험 진료비가 43조7000억원임을 고려하면 2020년에는 약 8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은 머지않아 파산할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고 그중 하나가 이번 약가 일괄인하 조처로 판단된다.

 

정부의 이번 조처가 국내 제약산업을 붕괴시키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리베이트를 고려해 책정된 특허만료 의약품과 복제약의 높은 가격 거품을 제거하는 한편 품질로 경쟁하는 투명한 의약품 유통문화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제약사들이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에 연구·개발(R&D) 지원 확대를 요구해 신약 개발이 가능하도록 국내 제약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로 삼는 것이 더 합리적인 대응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