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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칼럼)

병원비 애정남: 진료비확인요청제도

병원비 애정남: 진료비확인요청제도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상임대표)

 

 

나는 가족들과 함께 매주 대형마트에 간다. 큰 카트에 일주일동안 먹고 사용할 음식, 물건 등을 담으면 금방 십만원이 넘어간다. 계산대에 가면 점원이 바코드로 찍어서 총 금액을 계산해 준다. 20cm 길이의 영수증에는 콩나물 500g 2,000원 오징어 5마리 10,000원 형광등 1개 3,000원 돼지고기 200g 10,000원 등이 빼곡히 찍혀 있다. 살림꾼인 아내는 영수증에 찍힌 것과 실제 구입한 것이 맞는지 하나하나 확인한다.

 

 

 

 

나는 일전에 대형마트에서 시장을 보았는데 총 금액이 약 20만원 나왔다. 집에 와서 구입한 물건에 비해 금액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영수증을 확인해 보니 구입하지도 않은 자전거 1대 가격인 98,000원이 찍혀 있었다. 나는 화가 나서 대형마트로 달려가 점원에게 항의했고 98,000원을 환급받았다. 이렇게 환급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나에게 영수증이 있었고 영수증 내용을 이해할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대형마트에서 병원으로 장소를 한번 옮겨보자. 아내는 10년 전 백혈병 진단을 받고 대학병원에 입원해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골수)이식을 받았다. 49일간 입원치료를 받은 후 퇴원했는데 이때 약 1,800만원을 병원비로 지불했다. 그리고 받은 것이라고는 달랑 영수증은 한 장뿐이었다.

<사진> 진료비계산서 영수증

 

영수증에는 진찰료, 입원료, 검사비, 주사료, 선택진료비 등 몇몇 항목에 대한 금액과 전체 총액만 나와 있을 뿐이다. 의학적 문외한인 환자로서는 영수증만으로 진료비가 정확하게 청구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약제명, 용량, 급여비용, 비급여 비용 등이 상세하게 정리된 ‘진료비상세내역서’를 원무과에서 발급받았다. 하지만 내역서 분량도 엄청나고 전문적인 용어로 가득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 환자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적제도가 있다. 바로 ‘진료비확인요청제도’이다. 이는 병의원 이용 후 환자가 부담한 비급여 진료비가 적정하게 책정되어 징수되었는지 확인하여 과다하게 지불된 진료비를 환불받게 해주는 제도로서 2003년 도입되었다.

 

이러한 진료비확인요청제도는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납부한 비급여 진료비가 있는 경우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다만, 법령에서 정한 비급여 항목 중 초음파검사, 제증명료, 근골격계 MRI, 건강검진비용,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 예방진료, 치과의 보철, 한약첩약, 보조생식술 등은 제외된다.

 

진료비확인요청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환자 본인, 환자의 배우자, 환자의 직계 존비속 및 그 배우자와 형제자매, 환자와 동일 건강보험 관계가 있는 가입자 및 피부양자이다. 확인 요청인이 위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에는 환자의 인감이 날인된 위임장과 환자의 인감증명서를 첨부하여 민원을 요청하면 된다. 하지만 공공기관 개인정보보호에 따라 환자 본인 동의 없이 제기한 민원은 처리가 불가능하다.

 

진료 받은 환자가 직접 진료비 확인요청시에는 진료비계산서 영수증 또는 진료비(약제비) 납입확인서가 필요하고 진료받은 환자 이외의 자가 확인요청시에는 진료비계산서 영수증 또는 진료비(약제비) 납입확인서, 환자 자필 서명이 들어간 동의서, 가족관계 확인서류가 필요하다. 법령에서 정하고 있는 진료비계산서 영수증 보존기간이 5년이므로 치료를 마친 마지막 날 기준으로 5년 이내에 진료비 확인요청을 해야 한다.

 

진료비확인요청제도를 이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인터넷으로 신청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www.hira.or.kr)에서 회원가입 후 첫 번째 화면에서 <진료비 확인>을 클릭해서 요청서를 작성한 후 해당 진료비계산서 영수증 또는 진료비(약제비) 납입확인를 파일첨부 또는 팩스로 보내면 된다.

 

 

 

두 번째는 전화(1644-2000)로 신청하는 것이다. 이때는 신청서와 해당 진료비계산서 영수증 또는 진료비(약제비) 납입확인서를 팩스나 우편(137-706 서울시 서초구 효령로 267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보내면 된다.

 

진료비 확인요청이 접수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진료비가 적정한지 심사한 후 과다 청구가 발견되면 해당 결과를 서면으로 알려준다. 전체 처리 기간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3개월 이상도 걸린다. 환불은 해당 의료기관에서 지급해 주나 가끔 의료기관에서 지급을 미루는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환불금 지급요청을 하면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해 준다.

 

진료비 확인요청을 하면 보통 원무과에서 곧바로 전화를 해서 취하나 합의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료비확인요청제도는 진료비에 대한 환자의 알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법에서 인정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취하 또는 합의를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환자의 자유에 달렸다.

 

동네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도 잘못 계산되어 더 지불한 비용이 있다면 주인이 정중히 사과하고 환급해 준다. 마찬가지로 진료비도 잘못 계산되어 더 지불한 비용이 있다면 병의원은 당연히 환급해 주어야 한다. 진료비계산서 영수증만으로는 환자가 더 낸 진료비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의 알권리와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라는 공공기관에서 대신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제 진료비가 정확한지 의문이 들 때면 건강보험심사평가의 진료비확인요청제도를 이용하는 것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