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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기사)

[청년의사] 길 잃은 암 생존자 100만명 살아갈 길 열어줘야

[기획]“길 잃은 암 생존자 100만명 살아갈 길 열어줘야”
암 생존자의 정신·신체·사회적 문제 국가 차원에서 관리되나

 

 

2013.09.03 청년의사 엄영지 기자

 

 

 

조기검진을 통한 빠른 암 치료와 세계적인 암 치료 수준에 힘입어 암 생존자 100만 시대가 도래했다. 특히 암 치료 후 5년이 지나고 완치 판정을 받는 환자가 해마다 증가하면서 암 생존자에 관한 개념도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암 진단 후 5년 이상 생존자를 암 생존자라고 일컬었다면 지금은 진단 후 5년이 지나지 않았더라도 급성기 치료가 끝나고 추적관찰 중인 환자, 완치됐거나 재발 가능성이 낮아 암 진행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환자를 모두 암 생존자로 본다.

 

하지만 암 생존자가 매년 늘고 있어도 이들이 갖고 있는 심리·사회적 문제를 관리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암 생존자에 대한 관리를 지역 암센터 중심으로 시행하고 국가차원의 사업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본부 서홍관 본부장은 “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함에 따라 초기에 완치하는 비율이 높아져 암 생존자가 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암 생존자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60%를 넘어섰지만 암 생존자 삶의 질 문제는 여전히 관리가 안 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암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암 생존자의 심리·사회적인 문제까지 지원해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끌고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암 생존자 100만 시대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가 지난 2012년에 발표한 ‘2010년 암등록통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0년 한해 동안 암으로 진단받은 환자는 20만2,053명으로 2009년(19만4,359명) 대비 4.0%, 10년 전인 2000년(10만1,772명) 대비 98.5% 증가했다.

 

암 환자의 생존율도 늘었다. 암 환자의 5년(2006~2010년) 생존율은 64.1%로, 2001~2005년(53.7%) 대비 10.4%, 1993~1995년(41.2%) 대비 22.9%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전국 단위 암 통계가 처음 집계된 지난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암 진단을 받고 2011년 1월 1일까지 생존하고 있는 암 생존자는 총 96만654명이다(2010년 국가암등록통계).

 

이에 대해 서홍관 본부장은 “조기 건강검진으로 인해 초기에 암을 발견하는 일이 많아지고 치료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암 환자의 생존율이 많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가암검진의 수검률은 지난 2004년 38.8%였으나 2012년 63.4%로 크게 증가했다(암 검진 수검행태조사, 국립암센터).

 

 

암 생존자 신체·정신적 문제 커

 

이처럼 암 생존자가 해마다 꾸준히 늘자 암 생존자에 대한 건강관리도 만성질환처럼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암 생존자는 암 치료 이후 나타나는 증상 이외에 다양한 신체적·심리적 문제를 경험하는데, 이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이정권 통합치유센터장(가정의학과)은 “암 환자가 기본 치료가 끝나고 정기적인 추적검사를 받으면서 확장된 생존 시기에 진입하는데 이 시기는 재발의 두려움으로 피로, 운동 제한, 치료에 따른 신체 이미지 손상 등이 따른다”며 “이들에게는 암을 이겨내고 일상생활 에 복귀하는 게 힘든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암 생존자의 정신·사회적 기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브란스병원 이수현(종양내과) 교수는 “암 치료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후기 합병증은 암 생존자의 치료 경력과 동반질환의 유무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나 이와 관련해 입증된 지식이나 임상연구가 부재하다”며 “암 생존자에 대한 후기합병증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서는 암 생존자의 동반질환, 생활습관, 나이 등을 고려한 코호트 연구 등을 통해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 신동욱(가정의학과) 교수도 “암 생존자의 이차암 발생 위험도가 일반인보다 2.3배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암 생존자들이 이차암 검진을 적절히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라인 체계가 미흡하다”며 “따라서 암 생존자의 이차암에 대한 인식과 지식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실제 이들이 이차암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시키고 조정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국립암센터가 지난 2009년 암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암 환자는 ▲정부 및 민간차원의 암환자 지원 정보 ▲암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 ▲현 질병 상태와 향후 진행경과에 대한 정보 ▲의사의 쉽고 자세한 설명 ▲검사 및 치료에 대한 정보 ▲식생활에 대한 정보 등에 대한 요구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미국, 일본 등 의료선진국들은 이같은 암 생존자의 다양한 요구를 인지, 이들에 대해 체계적인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국립암센터 암정책지원과 박종혁 과장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국립암센터(NCI)에 암 생존자 부서(office of cancer survivorship)를 두고 국가 수준에서 암 생존자 관리를 하고 있다.

 

일본도 500억원 정도의 예산을 340여개 지역거점 암병원에 투자해 암 생존자에게 정보 및 상담을 제공하고 있고, 뉴질랜드는 ‘암 재활’이라는 이름의 암 생존자 관리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나라마다 암 생존자 관리 사업에 대한 형태 및 명칭은 달라도 정신과 전문의, 심리학자, 재활치료사 등이 참여하는 다학제적 프로그램을 통해 암 생존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는 암 생존자에 대한 의료진의 관심이 적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지원 및 프로그램도 전무한 실정이다.

암 생존자 관리 방안 모색 ‘이제 시작’

 

암 생존자에 대한 관리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선진국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암 생존자 관리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국립암센터에서는 최근 국내 50여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암 생존자가 겪는 다양한 문제 및 관리전략 등을 담은 ‘근거중심의 암 생존자 관리’를 출간, 의료인의 다학제적인 접근을 주문했다.

 

이 책은 ▲암 생존자의 관리현황 ▲암 생존자의 신체적 문제의 관리 ▲암 생존자의 정신사회적 문제의 관리 ▲암 생존자의 건강습관 관리 ▲환자군별 문제 및 관리 전략 ▲암 생존자 관리체계 등을 담고 있다.

 

국립암센터는 앞으로 의사, 간호사, 환자를 위한 교육용 자료도 별도로 제작, 암 생존자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알릴 예정이다.

 

국립암센터 서홍관 본부장은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수술 후 음식 섭취에서부터 스트레스 관리는 물론 합병증 관리에 이르기까지 적절한 방법을 몰라 두려워한다”며 “이 책을 통해 암 생존자 관리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는 한편, 더 나아가 의료인과 환자 교육용 프로그램을 제작, 배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도 최근들어 암 생존자들의 장애, 정신·심리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제3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2011~2020년)의 일환으로 ‘암 생존자 통합지지사업’을 추진, 암 생존자 관리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암 생존자 통합지지사업’이란 신체증상, 영양, 운동, 심리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암 생존자들에게 상담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생존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건강한 사회복귀를 돕기 위한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복지부는 통합지지센터를 오는 2015년까지 6개 지역암센터에 설치하고, 2020년까지 지역암센터를 추가 지정해 총 12개의 통합지지센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암 진단을 받은 암 생존자가 지역 내 통합지지센터를 이용하는 비율을 오는 2015년 5%에서 2020년 10%까지 단계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암 생존자 통합지지사업’에 앞서 지난 2010년 전남지역암센터에 암 생존자 통합지지 서비스 전달체계 시범사업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 암 생존자의 절반 이상이 신체적·심리적 증상개선이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암 생존자 통합지지사업’ 연구를 진행한 국립암센터 박종혁 과장은 “전남지역암센터에서 지난 2010년 6월부터 2년간 시범사업을 진행한 결과, 통합지지서비스를 받은 유방암 생존자 84명 가운데 56명(66.9%)에서 불안-우울에 대한 증상이 개선됐고, 영양불량상태였던 31명의 환자가 영양상담 및 교육 등을 받은 이후 영양개선이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예산 확보·환자단체 목소리 필요

 

하지만 복지부의 ‘암 생존자 통합지지사업’이 실제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예산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홍관 본부장은 “복지부에서 암 생존자 관리 사업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기획재정부에서 관련 예산 승인을 안 해주는 모양”이라며 “예산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암 생존자 관리에 대한) 이슈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종혁 과장은 미국 등에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환자·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암 생존자 관리에 대한 필요성을 국가에 호소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환자단체를 비롯한 비영리기구(NGO)가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과장은 “국회의원들조차 암 생존자 관리 사업에 관심이 없어 답답한 부분이 있다”며 “우리나라 암 생존자가 100만명에 이르는 만큼 환자단체 등 NGO에서 암 생존자 관리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한국환연) 안기종 대표는 “연합회 내부에서도 암 생존자의 사회복지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운영진이 소수이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미국은 암 생존자가 1,000만명에 이르고 각종 NGO단체가 대규모의 연구비 펀드를 모아 암 생존자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단체나 시민단체의 규모나 영향력이 작아 큰 목소리를 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안 대표는 국가차원에서 암 생존자에 대한 관리가 빠른 시일 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환자·시민단체 등 NGO와 병의원, 정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그동안 국립암센터를 중심으로 암 생존자 관리를 위한 각종 토론회, 공청회가 개최된 것으로 아는데, 환자단체를 초청한 적이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며 “앞으로는 환자단체에서 암 생존자 관리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병원과 정부에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했다.

 

안 대표는 이어 “우리나라는 암 생존자 관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잘 안 돼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암 생존자 관리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 “단계적으로 제도 구축하겠다”

 

복지부는 제3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을 토대로 암 생존자 관리에 대한 사업을 단계적으로 밟아나갈 방침이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암 생존자 관리 시범사업 대상기관을 지역 암센터에서 보건소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복지부 질병정책과 관계자는 “암 치료 수준은 외국과 비교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이제는 암 치료를 넘어서 암 경험자(=암 생존자)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며 “지역 암센터 중심으로 한 (암 생존자 관리) 시범사업을 앞으로 보건소까지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립암센터에 암 생존자 관리 연구용역을 줘 진행한 결과 (암 생존자를 관리하게 될 기관에서 근무할) 전문 인력 양성이 우선인 것 같더라. 하드웨어(암 생존자 관리 기관)는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제는 암 생존자를 관리할 수 있는 인력이 양성돼야 한다”며 “다만 지역별로 암센터 짓는 속도가 더디기 때문에 암 생존자 관리 사업을 단시간에 가져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또한 (암 관련 사업을) 심·뇌혈관질환 등 다른 중증질환 관련 사업과 같이 가져가야 하는 문제도 있어 (암 생존자 관리) 시범사업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한 후 단계적으로 진행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